[Gleanings in Joshua 335] 기업의 완전한 소유와 나태함(수 17-19)
영적 게으름뱅이의 세대를 만들어내고 조장해온 여러 원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설교자들의 나태함이다.
부드럽고 편안한 직업을 구해온 사람들이 목회 사역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한밤중까지 등불을 밝히며 연구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전념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둘째. 신실하지 못한 설교이다.
거의 한쪽으로 편중된 내용이 태반이다. 곧 축복과 특권들에만 집중하고 임무와 의무들은 소홀히 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들은 극대화시키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요구 사항들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셋째. 운명론적 사고를 조장하고 격려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그리고 인간의 능력과 책임 사이의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를 사용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더 많은 은혜를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무리들을 양산해 놓았다.
넷째, 하나님이 부여하신 임무들을 행하는 중에 어려움을 만나 곧바로 좌절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믿음으로가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요, 수고의 열매가 너무 작아 보여서 그것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데살로니가후서 3:13의 권면을 갈라디아서 6:9에서 반복하여 주시는 것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갈 6:9).
"그러나 이스라엘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수 18:2).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언가 하나님의 작정이 가로막았었나?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데 있었다. 곧 그들 자신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바로 그 다음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의지가 없으셨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 자신이 의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술은 그저 설명하는 의미 이상의 것으로, 질책의 성격을 지닌 말씀이었다. 여호수아 15:63과 16:9-10에 기록된 내용에 비추어 보면, 나태함의 자세가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가를 알 수 있다.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악이 이제 나머지 지파들에까지 퍼져 있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며"(갈 5:9), 특히 지도자들의 개입되면 더욱 그런 법이다. 주요 지파의 사람들이 꾸물거리면, 더 낮은 부류의 사람들이 곧바로 그들을 본받으니 말이다.
이 지파들은 그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이 없었고, 그들의 유리한 점들을 활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