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11]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왕하 3:4-5).
모압은 다윗에게 정복되고 이후 왕국이 둘로 나누어진 후에도 이스라엘의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합 왕이 죽자 이스라엘을 향해 칼을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압의 반란은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따라 일어났다. 만약 이스라엘의 왕들과 아합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방신을 버리고 살았다면 하나님은 모압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타락은 현실적인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죄를 징벌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마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분명 죄는 심판을 받는다. 지금 아합의 자녀들이 모압을 반역으로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합이 죽자 모압 왕은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왕하 3:5).
모압 족속은 롯이 자신의 장려와 동침한 후에 출생한 자손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강하고 잔인하며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유다와 홍해의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갔다. 그래서 출애굽기에는 모압 족속을 영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발락은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악한 선지자 발람을 초대하였다. 그는 모압 왕들 중의 하나였다. 다윗이 이들을 종으로 만든 후에는 열세대가 지난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만큼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는 민족이었다. 지금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압제를 당해온 모압 족속이 아합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
"유람왕은 사마리아에 나가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았다"(왕하 3:6).
모압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고, 오랜 세월 오랜 시간 이스라엘의 종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요람(여호람) 왕은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했다. 찾고 모든 사정을 말해야 했지만, 왕은 하나님을 거절했다. 또한 이상하게도 이방신에게도 모압에 대한 저주를 부탁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면 요람(여호람)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불쌍한 사람은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필요한 시기에 피난처를 구하지 못하고 마음을 말할 것도 없는 사람은 영원히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으며 영원의 안식과 위로를 얻지 못하고 방황과 절망 속에서 살고 있다. 세상에서 영원한 약속 받지 못한 자는 이제 영원한 파멸을 기다려야 한다.
"유람이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람들을 보내야 말했다. 모압 왕이 우리를 반역했다 나와 함께 모압과 싸우러 가지 않겠는가? 여호사밧이 말했다. "왕과 함께 가겠다. 기꺼이 왕과 함께 싸우러 가겠다. 나는 당신과 하나이고 내 군인들과 내 말들은 왕의 군대나 마찬가지이다"(왕하 3:7).
저명한 주석가들은 요람(여호람)이 부친의 바알 우상을 없앤 것은 정치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단순히 유다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식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여호사밧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
요람(여호람)의 정치적인 쇼에 대해서는 13, 14절에 나오는 엘리사의 대화를 보면 알게 된다. 분명 사람의 눈과 마음을 훔치고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속일 수는 없었다. 엘리사는 요람(여호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여호사밧이 말했다. "왕과 함께 가겠다. 기꺼이 왕과 함께 싸우러 가겠다. 나는 당신과 하나이고 내 군인들과 내 말들은 왕의 군대나 마찬가지이다"(왕하 3:7).
이 구절에는 이상한 부분이 들어 있다. 여호사밧이 간단하게 요람(여호람)의 말에 동의하고 군대를 일으키고 있다. 이전에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아합과 군사적 동맹을 맺어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은 적이 있다. 예후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전했다.
"예후는 선견자였다. 어찌하여 악한 백성을 도와주셨는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 왕에게 노하셨다"(왕하 19:2).
왜 여호사밧은 이렇게 쉽게 동맹을 맺었을까? 아마도 요람(여호람)이 시작한 종교 정치적인 개혁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왕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여호사밧이 물었다. 어느 길로 모압을 치러 가는 것이 좋겠는가? 요람이 대답했다. "에돔 광야 길로 갑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은 에돔 왕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들이 칠 일 동안 행군하던 중에 군인들과 짐승들이 마실 물이 다 떨어졌다. 이스라엘 왕이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여호와께서 우리 세 왕을 모압 사람들에게 넘겨주시려나 부르셨나 보다"(왕하 3:8-10).
하나님께 전쟁의 모든 것을 구해야 하는데 이 세 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절했다. 분명 에돔 왕의 도움을 구했던 것 같다. 그러나 광야 길에서 군사들이 먹을 물이 바닥을 드러냈다. 암담한 현실이다. 전쟁도 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일로 인해서 요람(여호람)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자책하기 시작했다. 항상 문제의 시작은 불신앙적인 마음에서 시작한다.
"자기의 미련 때문에 망하고서도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잠 19:3).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