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09] 가나안 땅의 분배(수 14:1-16:10)

En Hakkore 2024. 11. 19. 19:55

이 두 가지 원칙들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시도한 일도 지금껏 보지 못했다.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각 지파들을 그 규모에 따라 구별하는 인간적인 요소와 각 지파들의 몫을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신적인 요소)를 서로 연결시키는 오랜 문제점이 여기에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이 경우에는 실제로 아무런 난제가 없다. 규모가 큰 지파들이 더 큰 땅을 할당받게 되어 있었고, 다만 가나안의 땅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땅이 해당 지파의 기업이 되는가를 정하는 데에 "제비" 가 사용되는 것뿐이었다.

여호수아도, 엘르아살도, 각 지파의 족장들도 자기들이 생각이나 의향에 따라 땅을 택할 자유가 없었다. 각 지파가 받을 기업의 최종적인 위치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져 있었고, 그 결과가 곧 그들이 생각이나 바람에 어긋난다 해도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르게 되어 있었다.

이런 식의 방식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합당한 위치를 그대로 인정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각 지도자들의 편에서 편파성이나 지우침이 전혀 배제되도록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백성들이 전혀 불평의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이 두 가지 원칙들을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 원칙들을 지정해 주신 하나님의 지혜를 높이 찬송하게 된다.👏 규모가 큰 지파들이 작은 지파들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할당 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지극히 공평하고도 현명하다 하겠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 본성을 고려하면, 그 문제가 전적으로 이스라엘 자신에게 맡겨졌을 경우에는 약한 지파들이 그들의 정당한 몫을 할당 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그들만의 몫을 전혀 활동 받지 못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십중팔구는 그들이 가장 선호도가 낮은 땅을 할당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적인 감독이 반드시 필요했다. 할당받은 각 땅의 정확한 경계를 정하는 일은 물론 그 위치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거니와, 산악지대와 비옥한 골짜기 지대를 각기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여러 경우에 하나님의 법이 약한 자들의 복지를 보호하며 또한 여호와께서 항상 가난한 자들과 핍절한 자들의 대해 항상 큰 관심을 기울이시는데, 이 경우에도 과연 그랬다.🍇

여호수와 14:1-2과 아울러 다음의 레위기 25:23-28을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물을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물을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레 25:23-28).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부동산과 부동산의 전매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이었는데, 이 법은 과연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권리들을 똑같이 충실하고도 공평하게 보호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경우 부동산을 조건부로 매매할 수 있었으나,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어 원래의 소유주에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일이 절대로 없게 되어 있었다.

위의 본문은 특별하고도 유일무의한 재산법을 제시해 주며, 거기에 의와 자비가 복스럽게 뒤섞여지도록 하며, 개인의 재산권을 권장하는 동시에 탐욕을 억제하는 놀라운 지혜가 돋보인다. 이러한 토지 분배는 "국가 소유권" 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열두파들에게 각기 땅이 분배되었고, 또한 각 지파의 영토 내에서 다시 그 가문들 사이에 땅이 할당되었기 때문이다. 혹 어려움과 빈곤 때문에 한 가족이 그 땅을 저당 잡히거나 매매할 경우, 근검절약하며 더 갖고자 하는 자들의 자기들의 소유를 늘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그 소유권이 다시 원 주인의 소유로 되돌아갔고, 그리하여 "자본가들"의 탐욕이 억제되었으며, 이로써 다른 사람들이 괴로움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재산을 영구히 소유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방지되었다.

이처럼 성경은 개인의 자기 집을 소유하고(참조, 요 19:27) 부동산을 보유할 권리를(행 4:34)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 소유권을 분명하고도 필연적인 암시를 통해 정죄한다. 성경의 가르침이 얼마나 다면적이며 포괄적인지 모른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정복하여 그 땅을 얻었으나, 자기들이 원하는 땅을 마음대로 차지할 수도, 그것을 모두의 공동 소유로 삼을 수도, 혹은 동의에 의해서나 강제에 의해서 그 땅을 공유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 자신에게 엄숙히 호소하여 제비를 통해 그 땅을 분배받았다. 가나안은 여호와의 땅이요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고 당시 모든 당사자들을 만족시키고 불화와 다툼을 방지하는 가장 합당한 방식이었다"(토마스 스코트).

그러나 여기서 작동되는 기본 원칙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도 확보되는 것이었음을 지적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지배자이시요 주인이시며, 사람들의 만사를 운행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그 분이야말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통제하시며 왕조의 생사를 결정 지으시는 분이시요, 각 사람의 영토의 한계를 결정하신 분이시다. 큰소리로 아멘! ♥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