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306] 승리의 전리품(수 13:1-33)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하였었나니"(민 32:7-8).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기업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것은 민수기 13:17-20의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의 어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계획 이면에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고약한 불신앙이 있었다.😥
그리고 신명기 1:12 22의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이라는 표현에서도, 그들이 길을 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신뢰가 없었음이 잘 드러난다.
그 땅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택해 주신 땅이요, 또한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이라는 것을 여호와께서 이미 알려 주신 바 있는데, 구태여 그들이 나서서 그 땅이 어떠한지를 어떤지를 정탐하는 일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는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있어 나아갈 길을 알려 줄 텐데,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구태여 조사할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알고 계시니, 구태여 우리가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이 우리 발을 비추는 빛이 되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기들 자신의 계획과 판단을 더 낫게 여겼다.
우리 역시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의 육신적인 제안을 수락했으나, 모세는 그 제안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여호와께 확인받고자 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신 13:2)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허락하셨으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담겨 있었다. 신명기 1:6-8은 1년 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올라가 그 조상들에게 주신 그 땅을 소유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실이 신명기 1:6-8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호렙 산을 떠나자마자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했다(민 11-12장). 하나님은 그들의 변덕스러움에 진노하셨고,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더욱 드러나도록 하시고자 이제 그들 자신의 정욕에 그들을 내어 놓으신 것이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서 그들의 불신앙과 사악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나님은 또한 모든 세대의 그분의 백성을 엄숙히 경계하시고자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다른 사람들의 죄와 그에 대한 징벌에서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뜻을 만족시키시고 우리 자신의 계획대로 따르도록 내버려 두실 때에는 우리가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우리 자신의 지혜나 우리의 감각적인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되면,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쓰라린 결과들을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민수기 32장 마지막 부분과 신명기 3장 중간 부분, 그리고 신명기 29장과 여호수아 12:4-6에서 이미 두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어진 영토를 상세히 기술한 바 있는데, 다시 그 내용을 여기서 반복해서 기술한다는 것이 다소 이상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헨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아홉 지파와 반지파가 이제 그들의 기업을 할당받을 받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형제들이 이미 기업을 받았으니 이제 그들이 받는 것이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다.
둘째, 여호수아가 따라야 할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에 유례가 없던 일을 새롭게 행하도록 명령받은 것이 아니었다. 모세가 요단강 동편의 땅을 두 지파와 반지파에게 분배했을 때에 그 자신이 거기에 있었으니, 그 모범을 따라 이제 그 자신이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셋째, 기업을 분배하는 일을 지체하여 나머지 지파들이 그들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여호수아를 독려하고자 함이었다. 요단 동편의 지파에게 대해 기업을 주신 여호와께서는 나머지 지파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배려하신 것이다.
넷째, 여러 해 전 두 지파와 반지파에게 주어진 몫을 지금에 와서 명확히 기술하는 것은 처음에 주신 그 기업의 권리를 확증함으로써 경계에 대해 논쟁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수아로서는 기존의 권리를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