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90] 최후 정복(수 11:1-12:24)

En Hakkore 2024. 11. 18. 16:18

앞에서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 말씀하는 중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영적 전쟁에 대한 적용 부분을 주로 강조했다. 하지만 문자적인 면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면 이 역시 합당치 않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의 상당 부분이 전쟁에 대한 기술이므로,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로 관심을 돌려 하나님과 전쟁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 적지 않게 중요하다. 하나님은 전쟁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싸움터에 그 끔찍한 현실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방관자이실까, 아니면 직접 전쟁이 개입하셔서 주관하시는 분이실까?

이런 문제에 대해 이리저리 사색한다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요, 불경한 일이다. 전쟁은 언제나 끔찍한 재난이요, 한 부류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싸우는 내전(內戰) 의 경우나, 혹은 여러 나라의 개입될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시기에는 극심한 고통과 고뇌로 인해서, 그 모든 일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많은 이들의 믿음이 흔들린다. 진리에 견고히 뿌리를 박고 있지 못하면,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신뢰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인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인간이 정글의 맹수들보다 더 잔인하다는 서글픈 증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안다. 사자와 호랑이는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먹이들을 죽이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끝없는 탐욕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동료들을 제거한다.😰

지난 여럿 세기 동안 야생 짐승들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였지만,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사람이 사람을 죽인 숫자는 수백만이 넘는다.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들이 무지막지한 사악함으로 인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이다. 사람을 먹이를 찾아 헤매는 짐승들을 만들어버린, 아니 서로에게 마귀가 되게 만든 그 인간 본성의 부패성은 아무리 탄식해도 모자란다.

이 '개화된' 세기[즉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만으로도 타락한 인간 본성의 전면적인 부패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히 확증되고도 남는다. 중생하지 않는 상태의 사람들은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 일 뿐이다(딛 3:3).

그러나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자세로 동료들의 무자비함과 사악함을 정죄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 역시도 그들과 똑같은 진흙 덩이임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혹 자비의 마음이 우리를 다스린다 해도 그것은 바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이 악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이 버리는 사악한 일들을 슬픔과 수치와 공포로 바라보는 한 편 그 모든 사건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간과하거나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이 최고의 운행자이시며 그 밑의 모든 대리자들은 그분의 통제 아래 있으며, 그가 없이는 그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그가 효과적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복수의 사역자들이다.

온 나라 전체가 파괴될 때조차도, 무슨 수단이 사용된다 해도 결국, 하나님의 손이 심판의 역사를 행하시는 것이다. 앞에서 간단히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나, 거기서 지적한 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애굽인의 정신[용기]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악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19:2-4).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이 문제에 대해 기존에 생각해 오던 바를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성읍이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고, 내전이 일어나 한나라가 괴로움에 빠지고, 나라들이 망할 때에,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악한 폭군들이 악독하기 그지없는 짓들을 저지른다 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들로서 그분의 뜻을 이행한다. 예레미야 25:9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을 "내 종"으로 - "내 종 모세"(민 12:7), "내 종 다윗"(시 89:3) 등의 경우처럼 - 언급하시는 것을 본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징벌하시고 파괴하시는 역사에 쓰임 받고, 그들은 구원하시고 세우시는 역사의 쓰임 받은 자들로서 똑같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들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그들이 네 자녀들이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때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믿는 경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렘 5:15-17).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