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284] 최후 정복(수 11:1-12:24)
한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일반 사람들의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삶의 형태에 대해 탄식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들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십분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쓰는 언어에도 동의할 수 없고, 그들이 제시하는 치유책이 과연 참된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그 지도자들은 모두 명백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이요,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아주 안전하지 못한 안내자들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의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입증 가능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그들 속에서 이런저런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못하도록 그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정당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주장은 뜻을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요, 그렇게 실패한 그리스도라면 결코, "승리하는" 추종자들의 지도자가 되실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사 9:6)이신 그분과는 전혀 다르다.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려 있을 뿐이요"(잠 26:7), 자기들의 일관성을 지극히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흔히 그들의 믿음과 행실에서 가장 일관성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거룩한 생활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싸우는 것은 과연 칭찬할 만한 일이요, 또한 그들의 소유가 된 것들을 소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것이 된 그 풍성한 기업을 누리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독려하는 일도 지극히 필수적이다. 하지만 올바른 지식을 통해 열정을 길들여 그것이 정도를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열광주의적 자세를 피하고 모든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점검해야 마땅하다. 빛의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만큼 사탄이 위험한 때가 없다.
육신적인 이성의 판단에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호하사 전혀 해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을 믿는 뛰어난 믿음의 행위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주제넘는 행동이요 성경에 반대되는 것임이 그리스도의 답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전적으로 굴복하면 그가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실 것이라는 식의 발언이 그리스도의 지극히 높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가 우리 대신 회개해 주시고 믿어주신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우리 각자가 싸워야 할 일은 그가 대신 싸워 주신다는 것도 결코. 온당한 발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올바로 구하면 과연 그가 우리를 강건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강건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온전히 구비시키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아멘 아멘!
사도께서는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 29) 라고 선포한다. 이 진술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깎아내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여호수아 11장에 대한 논의로 다시 돌아가자.
이스라엘에 비해 자신의 군사력이 월등히 우수하다는 점과 자신은 수많은 말과 병거를 소유하고 있는데 반해서 이스라엘 군은 보병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고서, 야빈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의 선제공격을 감행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편에서 선제공격을 하리라고는 결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혀 뜻밖에도 이스라엘에서 이제 공격을 시도했다.
"이에 여호수아가 그와 군사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수 11:7).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순종과 담대함과 신속한 처신을 보게 된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군사적 기술이나 병사들의 용맹함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확신했다.👍
그가 지금 가나안 족속들을 공경하기로 결정한 것은 변덕스러운 자신의 감상이나 육신적인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바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갑자기 야빈과 그의 군대를 습격한 것은 즉시 결말을 보고 싶어하는 조급함이나 걱정 때문이 아니라. 바로 앞 절에 나타나는 대로 "내일" 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붙잡은 결과였다. 그의 행동은 모범을 무릅쓰는 것도 무턱대고 저절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소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담대히 그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었다.😎 훗날 다니엘서에서 히브리인들이 바벨론 왕의 칙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했던 것처럼 말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