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273] 최후의 정복(수 11:1-12:24)
1. 도전에 대한 대응
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중심 주제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서 그 정황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겠다.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수 11:1).
인간의 여러 부족들의 왕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그들이 군대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함께 모였다(수 11:1). 어떤 분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팔레스타인 남부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영향을 발휘했듯이, 야빈이 북부 지역에서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고 지적했다.
여호수아 10:1-5를 보면 아도니세덱의 공격이 직접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기브온 주민들을 향한 것이었다는 점만 다를뿐, 그의 처신이 여기 야빈의 처신과 정확히 일치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는 말을 거론한다는 것은 상투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유쾌하지 않은 면을 생각하게 한다.
한 세대가 과거 세대의 과오에서 전혀 유익을 얻지 못하고, 그들이 빠졌던 치명적인 함정에 다시 빠지는 일이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진흙 덩어리요(롬 9:21), 또한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잠 27:19) 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수 11:1).
이 중요한 단어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를 여호수아 2:10; 5:1; 9:1, 9 등과 비교하고, 그런 소식을 접한 자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주목하기 바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은 과연 사실이다(롬 10:17). 그러나 동시에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다(잠20:12). 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이런 사실이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귀와 눈이 멀었기 때문이여(마 13:13-14), 그러므로 죄인이 자비의 음성을 무시하며, 또한 그리스도에게서 아름다움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여 그분을 사모하지 못한다.
자기의 필요에 대해서도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전혀 무감각하다. 우리의 이적이 그의 속에서 일어나기까지, 그의 상상력이 어두워져 있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귀로 복음을 듣는 이들 중에 수많은 이들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을 얻은 자들은 오로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변화를 일으키사 다른 믿지 않는 자들과 달리 반응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야빈은 여리고 아이의 함락 소식을 들었으나, 두려워 떨기는 커녕 오히려 그 마음이 완악해졌다.
믿음 없이 동료들이 죽어가는 데에서 반복해서 경고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이처럼 멸망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한다. 여호수아 11장의 서두에 기록된 내용은 여호수아 9:2에서 간략하게 주목한 바 있는 내용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요 그 귀결이다.
여호수아 9:2의 내용은 서막으로서 각 왕이 함께 논의한 사실과 각 왕이 연합 작전을 위해 얼마나 강력한 전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는지를 보여 주며, 여호수아 11장 서두의 내용은 그들의 계획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방어적인 자세를 자세를 취했었으나, 아이성이 함박되고 불에 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격을 취하기로 결의했다.
첫째, 여호수아 11:1-3에 언급된 여러 왕들은 이제 자기들 자신의 안위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 상황에서 이제야말로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때가 왔다고 본 것이다.
둘째, 예루살렘 왕과 그의 연합 세력이 기브온 주민들을 무너뜨리기로 동의하여 실행에 옮겼으나, 기브온 공략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야빈을 비롯한 동맹 세력들(가나안의 서부와 북부 지방의 모든 부족들이 다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은 이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구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결의했다.
이처럼 여러 왕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동맹을 맺어 연합하는 일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보다 여러 세기 전에 이미 "서방 민족 연합"의 "동방의 세력" 공격이라 할 만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창세기 14:1-3에서 나타나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의이 움직임은 아도니세덱에게 주도했던 시도와 마찬가지로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만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91
🐝 마태복음 13장 13-14절.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