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59]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11. 15. 13:35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기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수 10:13).

야살의 책이란 일반적으로 민수기 21:14에 언급되는 "여호와의 전쟁기"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무엘하 1:18에도 동일한 책이 언급된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전쟁에 속한 뚜렷한 사건들을 연대기로 엮어 놓은 책이었을 것이다. 이 이적이 여호수아의 생전에 그런 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이 현상이 사람들이 뇌리에 깊은 감동을 주었음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사건의 진실성을 입증해 준다.

훗날 이스라엘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노래한 것처럼, 그들은 여호수아를 통해 자연의 틀 전체에 엄청난 효과를 내고 변화를 일으킨 그 놀라운 역사를 환호하고자 한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지자들의 영감된 기록들에서 이 기적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합 3:11).

이적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능으로 외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므로- 이적들은 신적인 증언을 통해- 보통 최소한 "두 증인" 이상의 증언을 통해- 입증된다.

이 사건이 과연 놀랍지만, 이런 규모의 사건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앞에서 출애굽기 10:22과 이사야 38:8을 실례로 제시했다.

하지만 "별들이...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삿 5:20) 라는 진술이나, 또한 별이 이적적으로 움직여 동방박사들을 동쪽에서부터 아기 예수가 있던 집에까지 인도하게 하신 일(마 2장)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본문에 대해 정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신비적인 해석을 해 보겠다. 하나님이 태양의 움직임을 통제하셔서 밝게 비추게도 하시고 어둔 구름 위에 드리우게도 하시듯이, 영적인 빛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지역은 기원 후 삼세기 동안 의의 태양의 복된 빛을 받은 후에 모하멧주의(이슬람교. 역주)의 검은 통치 아래 있게 되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같은 지역은 바울 당시에 복음의 영광된 빛을 받아 누린 이후 오랫동안 교황주의의 어둠 아래에서 괴로움을 당해 왔다.

반면에 이교도 지역들은 오늘날 복음화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자연의 빛과 어둠은 물론, 영적인 빛과 어둠도 그분의 명령을 받아 운행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 이적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과 만물에 대한 그분의 절대적인 통제권을 선명하게 입증해 준다는 점이다. 여호수아 자신은 자연의 틀 전체를 그렇게 놀랍게 바꾸어 놓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루실 그 일을 스스로 선포하는 권한을 그가 여호와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먼저 기도로 여호와께 아뢰었고, 그로부터 확신을 얻었으며, 그 다음 그의 말에 따라서 하늘의 태양과 달이 여러 시간 동안 멈추어 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과연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제1 원인이시요 최종의 목적이심을 지혜로우신 계획자시요, 만사를 진행하시는 관리자로서, 모든 일을 그 자신의 뜻에 따라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행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 일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매 사건에서 하나님이 지혜와 선하심과 능력을 깨닫게 된다. 이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실상 무신론이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여호수아 10:13에 대해서 존 길(John Gill)은 이렇게 말한다.

"나로서는 이 일이 코페르니크스의 체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혹은 과연 그 체계와 조화를 이루기는 할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으신 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해하고 있는 체하지 않는 법이다. 이보다 더 지혜로운 일은 하나님이 이미 알게 해 주신 일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임의대로 이론을 제기하거나, 혹은 "거짓된 지식의 반론"(딤전 6:20)에 근거한 가설 통해 그것을 "조화시키는" 해석을 제시하는 프러시아의 천문학자의 행위를 거부하는 것일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