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44]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11. 13. 15:20

3. 구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한창 젊은 시절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는 이런 말씀이 비교적 우리에게 크게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번영의 햇살을 누리는 동안에는 우리가 폭풍을 위해 준비된 피난처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그분의 자녀가 조만간 그분의 말씀에 그런 구절이 있다는 것을 극히 감사하게 하시고 경험적으로 그 구절의 진실성과 고귀함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구름이 소나기를 뿌려서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듯이, "환난"이 변장한 축복임을 발견하게 된다. 환난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축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럴 경우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사람들이 불경스럽게 "나쁜 운수"나 "나쁜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갖가지 괴롬은 사실 경솔한 결정이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닥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환난이 과연 자기 때문임을 인정하고, 그런 환난을 불러온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 환난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구하면 그 기도가 응답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악에서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큰소리로 아멘!

시편 46:1에서 강조하는 것이 점층적이라는 사실이 매우 귀하게 다가온다.

첫째, 하나님 자신이 친히 "피난처시요 힘"이시다.♥

곧, 하나님이야말로 우리가 구원이 필요하고 피난처가 필요할 때 호소할 수 있는 분이요, 그분의 은혜로 모든 필요를 충족히 채워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둘째, 환난 중에 있는 그 백성에게 그는 진정한 "도움"이시다.♥

그는 좋을 때에만 친구가 되어 주는 그런 분이 아니고, 역경과 괴로움이 가득할 때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셋째, 이 사실이 확대된다.

곧, 그는 그냥 "도움" 이 아니라 현재의 도움이시요, 먼 거리에 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 옆에(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에) 계신 "도움"이시라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더욱 강조하여 "큰 도움" 이라고 말씀한다.

스펄전의 말을 빌리면, "환난 그 자체보다 더 가까이서 함께 하는 도움이다.

잘 보시기 바란다. 여호와께서 "환난 중에" 큰 도움이시라고만 말씀하지 않고(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잘못 인용하지만) 환난 그 자체 속에서 만나는 큰 도움이시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다.🍒

그는 환난 중에 늘 함께 계시는 도움이시며, 환난을 견디도록 우리를 지탱시키시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시고, 그것을 이기게 하시며, 그 환난 속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아멘!

시대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이 사실을 풍성하게 입증해 오고 있다. 그는 라반과 에서의 미움을 가라앉히시므로 야곱에게 "환난 중에 만난 큰 도움" 이 되셨고, 애굽에 있는 동안 요셉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사자굴 속에 있던 다니엘에게도 그러하셨다. 그러니 그는 오늘날도 동일하신 것이다! 아멘.

우리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신중하게 처신한다 해도, 이런저런 형태의 환난은 피할 수 없다. 마치 불꽃이 위로 튀듯이 사람이 환난을 당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욥 5:7).

나 자신이 잘못을 반복하는 타락한 피조물이요, 악한 자들에 속한 세상에 거하고 있으니, 어찌 그렇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당혹케 하거나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신의 정당성과 가치를 개인적으로 입증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괴로움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함이다.👏

시편 기자를 본받아야 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시 77:2) - 문젯 거리들을 스스로 처리하고, 그릇된 것들을 자기 손으로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 문제가 더 악화될 뿐이기 때문이다. 신자의 임무와 특권은 분명하다. 다음에 보배와도 같은 약속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에 의지하여 간구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