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237]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1. 화친
첫 절에서 드러나는 대로 여호수아 10장은 6장, 8장, 9장과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오늘날 주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들을 발견하고 누리기 위해서는(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이것이 우리의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6장과 8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한 기사를 대하는데, 9장에서는 사뭇 다른 주제가 제시된다. 아이성 싸움 이후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이스라엘은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기브온 주민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스도인의 경험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주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원수와의 싸움에 능동적으로 임하여 뚜렷한 승리를 얻고 난 후, 잠시 동안 비교적 조용한 휴식기를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제 싸움의 가장 힘든 부분이 끝났으니 잠시 편안히 쉬어도 안전하다는 식으로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에 시사해 주며, 또한 사탄이 그렇게 쉽사리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해 준다. 이스라엘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닐뿐더러, 가나안 족속들의 더욱 결연한 항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왕의 군대가 아니라 다섯 왕들의 군대 전체가 무더기로 몰려드는 것을 감당하고 그들을 패퇴시켜야 한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역사에서도 똑같은 사실이 나타난다. 그분의 은혜로운 사역이 진행될수록 그 분을 향한 반대의 세력들이 맹렬하게 공격했다. 주님이 그러셨으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자면, 여호수아 10장 첫 부분이 바로 앞장의 결론 부분을 적용하면서 제시한 모형적인 논의를 확증해 주는 것을 보게 된다.
앞장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기브온 주민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굴복하는 모습을 혹은 청교도들이 자유롭게 제시한 표현을 빌자면, 그들의 "하나님과의 화목"을 그려 준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좀 더 최근에 어떤 이들은 그 표현에 결정적인 예외가 있음을 지적했다. 죄인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화목"을 이루셨으므로 죄인이 그 일을 시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논지는 서로 다른 것을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것과 그것을 우리에게 실제로 적용시키는 것을) 혼동한다. 문제는(이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이루신 그 법적인 "화목"의 혜택들에 개인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오로지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충만히 속죄하셨다는 것을 그저 믿고 그분의 희생의 충족성에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 정도만 답한 것이고, 믿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은 그냥 남겨두는 것이라 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이 본문들에서 보듯이, 믿음처럼 회개가 필수적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회개가 없는 마음은 구원 얻는 믿음을 발휘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이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는도다"(마 21:32) 라고 책망하셨다.
그들이 자기들의 죄악되고 버려진 처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요한의 사역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개는 오로지 유대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지극히 초보적인 진리들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지상명령에서 그분의 종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눅 24:47)을 명령하셨고, 또한 그분의 사도는 하나님이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행 27:30)고 선포하니 말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 부름은 그것을 무시해 온 자들에게 (그분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분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전적으로 자기들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온 자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요구를 절실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에 이름뿐인 신자들이 가득한 이유는 바로 회개를 거의 선포하지 않는데 있다.😰😥
회개는 나 자신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편에서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끔찍한 나의 적대적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이것은 회심의 사사로운 면이다. 하나님을 향해 돌아설 수 있으려면 무언가로부터 돌아서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죄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혐오, 마음으로 완전히 죄를 버리는 일, 그리고 하나님께 그것을 순전하게 고백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참된 회개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처신을 부리고자 하는 깊은 바람과 순전한 결단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가 금하시는 일을 고집하는 한, 정직하게 하나님의 사하심을 구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회개란 죄인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것이요, 반역의 무기들을 내던지고 그분을 향한 전쟁을 중단한다.
여기에는 "율법주의적" 이거나 공로를 세우는 문제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개하거나 혹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다 해도,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악행들의 과실은 사함 받지 못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변하시지도 않기 때문이다.
회개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르고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회개도 믿음과 마찬가지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비와 풍성한 용서를 받기에 앞서서, 악인이 "그의 길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사 55:7; 또한, 참조. 왕상 8:47-50; 행 3:19).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14
🍇 이사야 55장 7절.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 열왕기상 8장 47-50절.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 사도행전 3장 19절.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