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929》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그리스도(요 21: 1-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21:12).
이 말씀은 그가 겸손히 자신을 낮춘 모습으로 사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랑 많으시며 은혜로우시고 겸허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여실히 증명해 준다.
제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로 계속하여 서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가까이 와서, 그분이 불쌍히 여겨 준비하신 것들을 취하도록 청함받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가 두드리는 소리에 응답하는 자에게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여기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의 복되면서도 친숙한 말씀 "오라"는 음성을 듣는다.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라"고 하셨다. 그는 그들을 멀리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오라고 청하셨다.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21:12).
이 말씀을 결코 어떤 의심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었다는 완전한 설득력을 지닌 말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구절로부터 부활 후에 그리스도께 어떤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경외심이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동일한 분이신 동시에 동일한 분이 아니셨다. "그의 모습에는 의심을 제어할 정도로 이전의 형상이 많이 남아 있었으며, 또한 모든 호기심과 세속적인 의문을 저지시킬 만큼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들은 기이히 여기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바로 그들의 선생임을 익히 인지하면서 묵묵히 음식을 들기 위해 앉아 있었다"(Mr. G. Brown).
그들의 의문을 압도한 것은 그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21:13).
만찬의 주인으로서, 가족의 장으로서 그는 이제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이제는 예전에 공식적으로 하셨던 것처럼(6:11) 그의 객들과 함께 음식을 앞에 놓고 축사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이전에 그가 그들 모두 앞에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던 것은 완전한 인간, 사역하는 종으로서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으로서 그 자신이 주시며,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바로 주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전에는 그의 인성이 더 두드러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신성이 더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이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분이 여전히 그들을 보살펴 주는 그들의 목자이심을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복된 일이다.
이것은 현재의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복된 특권인 그리스도와 함께 즐기는 저 영적인 교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계속되어질 미래의 관계에 대한 서약이기도 하다.
장차 다가올 날에조차 그는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눅 12:37) 들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계 2:7)할 것이다. 그리고 "감추었던 만나"(계 2:17)를 줄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21:14).
이것은 주께서 전부 합하여 단지 세 번 형상을 나타내셨다는 뜻이 아니라 요한이 기록하도록 이끌림 받은 것이 세 번이라는 의미이다. 그가 언급한 다른 두 번은 20장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일이 언급된 사도행전 1장의 "사십 일 동안"에서 그리스도는 예전처럼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신 것이 아니라 단지 때때로 그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신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 요한복음 21장에서의 물고기의 기적을 누가복음 5장에 기록된 물고기의 기적과 비교해 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상당한 비교점과 대조점을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 다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나났으며, 온 밤에 걸친 헛된 수고 후에 발생된 일이었다. 두 기적 모두에서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증명되었으며 베드로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전자에서 주님은 배 안에 계셨고, 이번의 경우에는 바닷가에 계셨다. 이전의 기적에서는 그물이 찢어졌으며, 후자의 기적에서는 찢어지지 않았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시작될 무렵이었으며, 후자는 그가 부활하신 후였다. 전자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람"을 낚는 것이었으나, 후지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을 먹이는 것이었다. 전자에서는 물고기의 수가 언급되지 않았으나, 후자에서는 기록되었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