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162]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풂 1(사무엘하 9장)
사무엘하 9장은 다윗의 삶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들 중 하나를 보여 준다. 우리가 그 장면을 적절하게 이해하려면 그의 초기의 경험들, 특히 그가 사울에게 받았던 불친절한 대우를 회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나는 이스라엘 여인들이 이새의 젊은 아들이 골리앗에게 거둔 승리를 축하하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사울 왕의 가슴에서 불타올랐던 질투심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나중에 그는 다윗에게 창을 던지는 등 거듭해서 그를 죽이고자 했기에 결국 다윗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그럼에도 사울 왕은 그를 잡아 죽이기로 결심하고 무자비하게 그를 뒤쫓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전장에서 학살당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영웅은 아주 존경할 만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는 그의 왕권을 무도하게 혹은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고결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그는 자기의 적의 후손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고 동정을 베풀었다. 그는 자기의 손에 죽을 것을 두려워하던 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다윗의 친절의 예표적 의미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 9:1).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질문에 담겨 있는 애수(哀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대상 8장 33절은 사울의 네 아들들의 이름들을 열거하는데, 이제 그의 후손들은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물을 필요가 있을 만큼 줄어들었다. 확실히 조상들의 죄는 후손들에게까지 이른다(출 20:5).
오,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둘째로, 우리는 다윗이 품었던 자비로운 계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사울 집안에 혹시라도 생존자가 있는지 물었던 것은 그런 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함이었다.
그를 움직였던 것은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었다. 그는 늘 요나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 집안의 생존자에게 관용과 아량을 베풀고자 했던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사울 집안의 늙은 가신 한 명을 다윗에게 데려왔다.
그는 그 집안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떨어졌는지 잘 아는 자였다. 다윗이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삼하 9:3).
이때 다윗의 처신은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예시하는 내용은 복되기까지 하다. 나는 여기에서 특히 그것에 관심을 집중하려고 한다. 다른 저자들이 이 아름다운 사건과 관련해 지적하듯이, 온 이스라엘의 군주로서의 다윗은 우리에게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윗이 그의 대적의 후손에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은 죄인들을 은혜롭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예시한다. 또한 다윗이 호의를 베풀었던 자의 이름, 그가 살던 장소, 당시의 그의 처지, 그리고 그가 받은 놀라운 선물 등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총을 얻은 자들의 상황을 예표한다.
여기에서 묘사되는 모습은 그 상세한 부분들에서 아주 정확하다. 따라서 그것을 면밀히 살필수록, 우리는 그것이 지닌 복음적 특성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 우리의 마음이 그 절묘한 빛과 그림자에 의해 녹아지기를!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먼저 이 장면에서 주도권을 쥔 사람이 다윗이었음에 주목하자. 사울의 후손들 중 생존자 한 사람이 다윗에게 무언가를 제안한 게 아니라, 다윗이 먼저 그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의 대형(對型)이신 분 역시 마찬가지다. 먼저 움직이는 쪽은 죄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복음을 통해 자비의 제안을 하신다. 그리고 각각의 구원 사건의 경우에 그분은 그분을 찾지 않는 자들을 찾아가신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사 53:6). 그리고 길을 잃은 양의 본성은 점점 더 먼 곳으로 나가며 방황하는 것이다.
목자 자신이 구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길을 잃은 양은 결코 목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르에서 아브람을, 벧엘에서 야곱을, 미디안에서 모세를, 다메섹 도상에서 다소의 사울을 찾으셨던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던 게 아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윗이 찾고 있는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다윗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그럴 만도 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윗이 친절을 베푼 후에 그에게서 무언가 보답을 기대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다윗의 가장 무자비하고 사나운 적의 후손이었다.
그는 다윗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유산을 모두 잃고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묘사하는 것과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하나님은 그들 스스로 내세울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자들을 찾지 않으신다. 그분이 인간에게 구원을 제공하시는 것은 훗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 하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비참할 정도로 무가치한 사람들, 영적인 거지들,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죄인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는 그런 자들에게 "돈 없이 값없이"(사 55:1) 제공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213
● 이사야 55장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