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2024. 8. 8. 15:05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에 들어갔을 때 왜 천사가 만나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이 종종 제기되어 왔다. 천사들은 그때도 거기에 있었으나 다만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봄이 정확할 것 같다.

시편 91:11로 미루어 보건대  천사들은 거룩하신 시체가 무덤에 안치되어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성경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바,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며, 즉각적이고 초자연연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천사들의 임재를 자각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모든 신자들 각자의 곁에 현존하고 있다(히 1:14).

그러나 천사들이 인간보다 더 높은 서열의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예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천사들도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흰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으로부터의 해방과 순결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의 모든 거주자들의 특징이다. 우리 주님께서 변용하셨을 때의 옷도 흰 빛깔이었다.

그것은 천사들이 나타날 때 항상 취하는 빛깔이다. 영광을 입은 우리의 옷 빛깔도 흰색일 것이다(계 3:4) 고 앤드루스 주교는 무덤에서 천사가 위치해 있는 상태를 통해 적절한 교훈을 이끌어 냈다.

"천사들 사이에는 자리다툼이 전혀 없었다. 발 편에 앉은 천사는 머리 편에 앉은 천사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위치에 만족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보인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 천사였다면 우리는 모두 머리 편에 앉으려 하고 발 편에는 앉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즉 우리들이 그 입장에 처한다면 아무도 발 편에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 머리 편의 천사가 되려 할 것임이 분명하다!"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하니]"(20:13).

천사들 마리아가 애통해하는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그 말은 마리아의 마음을 일깨우려 한 온화한 질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너는 어찌하여 우느냐?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네 마음을 살펴보아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지 않음는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냐? 천사들이 여기에서 사용한 말은 구세주께서 20:15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다.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천사들의 말이 항상 하나님의 명에 따르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한 말도 "어찌하여" 라는 말로 시작되는 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불신과 두려움, 불평, 그리고 순종과 열심의 결핍이야말로 이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천사)을 크게 놀라게 하는 이유이다!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20:12).

천사들이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 그는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라고 위로에 넘치는 보증의 말을 할 틈을 주지 않고 마리아는 자기가 그토록 상심한 이유를 설명한다.

주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또 사람들이 주님의 시체를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 수 없으니 제가 어떻게 울지 않겠나이까! 여기에는 믿음과 불신, 지식과 무지, 사랑과 두려움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그녀는 나사렛의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주님을 가져갔다고 생각하였다!그녀가 천사들에게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한 것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천사들의 모습에 놀라기는커녕 마치 그들이 사람이거나 한 듯이 대답한 것이다. 그녀는 너무 큰 슬픔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에 너무 깊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울음을 그치고 하늘에서의 방문객들을 바라볼 염두도 내지 않았다.

그녀의 언어에 변화가 생긴 점에 주목하라. 그녀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할 때에는 적절하게도 "사람이 주님을 가져 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 혼자서 천사들에게 말할 때는 "내 주님"이라 하였다.

이것은 그녀의 사랑의 심도를 나타낸다. 신자들이 저마다 주님을 "내 주님"이라 말한다면 참으로 복된 일일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시 23:1) 하였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아 5:16). 사도 바울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자"(갈 2:20)라고 말하였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