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2024. 8. 8. 15:04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본문은 다시 살아나신 구세주의 첫 번째와 다섯 번째 나타나심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그 숫자의 의미는 유효하다.

일은 본질적인 유일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숫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주권은 승리하신 구속자를 맨 처음 보도록 큰 영광을 입은 택한받은 자의 성품 속에서 지극히 생생하고 복되게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최초로 나타내 주신 것은 열한 사도에게가 아니요 또한 요한에게도 아니었다. 그는 한 여자에게 최초로 나타내셨다. 그녀는 그가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자, 즉 사탄의 완전한 노예였던 자였다.♡

그리고 그가 성자이신 하나님으로서의 자기를 최초로 드러내 주신 것도 바로 그녀에게였다(17절 참고). 그의 다섯 번째 나타나심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그의 어머니에게였는가? 그렇지 않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게였는가? 아니다. 그것은 믿지 아니하는 사도들, 즉 그를 본 여자들의 말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취급한 사도들에게였다.

그의 다섯 번째 나타나심은 그를 보리라고 기대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자들, 믿음이 지극히 연약한 자들에게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실로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마리야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20:11)

이것은 그 앞부분과 연결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20장 서두에서 이와 관련된 장면을 읽을 수 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랑하는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그 사이에 두 사도는 무덤에 가서 내부에 있는 세마포를 살펴본 후 집으로 돌아가 구세주의 모친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른 한편 마리아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외롭고 슬픔에 가득 차 무덤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은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잠시 후면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분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실 것이었다.

이것은 잠언 8:17을 예증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은 부활하신 아침에 무덤을 찾아온 첫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죽음을 이기신 자의 최초의 나타내 주심을 입었다(마 28:9). 슬프게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찾는 일을 미루다가 최후의 순간에야 비로소 그를 뵙는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여기에서 성령께서는 사랑이 믿음으로 조정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신다. 그녀가 운 것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그녀가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주님의 시체가 무덤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그녀는 정말 울어야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주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며 십자가 상의 공로도 헛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의 죄 가운데서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울음은 사랑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불신의 표시이기도 하다.

성도들이 공연히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매우 잦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 것도 그녀를 위로할 수 없는 것처럼 울고 있었다. 그녀는 천사들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을 때도 울고 있었다.

천사들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님께서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말씀을 건네오셨을 때도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녀의 우는 이유는 한결같았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러나 그녀가 찾는 주님은 줄곧 그녀의 곁에 계셨었다! 그녀의 눈물은 공연한 것이었다.♡

광야에서의 하갈의 경우처럼(창 21:19), 마리아의 바로 곁에는 우물이 있었으나 그녀에게는 그것을 볼 눈이 없었던 것이다!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 그림이 많은 신자들의 체험을 나타내 주는 신실한 그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찾는 것을 손 안에 쥐고 있으면서, 그것도 바로 오른손 안에 쥐고 있으면서 우리는 그것이 없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인생에서 두려워 하는 일 중 대개는 발생하지 아니하며, 우리의 눈물 중 대부분이 낭비요 공연히 흘리는 것이다. 좀 더 깊이 신뢰하고 좀 더 많이 참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자.♡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이 진전되도록 좀 더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당시에는 비통할 뿐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모든 일들이 합하여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이루어 준다는 것을 믿도록 하자.♡

늙은 야곱은 한때 '모든 일이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 42:36)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서, 부유하고 번창한 요셉을 다시 만났으며 과거의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라일 주교).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