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91]
참된 신앙고백(마 7:21-27)
이제는 신앙고백자들의 서로 다른 유형을 살펴보자.
첫째로, 단순히 이름뿐인 신앙고백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단지 그것이 전부이다. 그들은 우연히 기독교가 우세한 종교인 나라에 태어났을 수도 있으며 또는 기독교를 어느 정도 알고 그것을 승인하는 것이 체통에 맞는 표시라고 간주되고 있는 나라에 태어났을 수도 있다.
그들은 아기였을 때 목사가 그들에게 몇 방울의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었고 어린 시절 동안에 종교의 원리에 따라 어떤 종류의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소신을 밝혀달라고 요청했을 때 기꺼이 자기들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단언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단지 유대인이나 이교도, 또는 공공연한 불신자가 아니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대개 믿음의 근본원칙을 극심하게 무시하며, 때때로 존경받을 만한 이교도들의 생활을 보고 자신의 생활을 보고 자신의 생활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다. 그들은 땅에서든 하늘에서는 그 축복에 참여할 수가 없다. 설령 그들이 축복을 누린다 해도 그 축복은 영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로, 형식적인 신앙고백자들이 있다.
이 부류는 그들 자신이 첫 번째 부류보다 대단히 앞서 있다고 간주한다. 그들은 어떤 요리문답을 반복하여 말할 수 있거나 또는 최소한 그리스도의 교훈과 율법에 대해서도 지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일정한 교회의 일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교회를 '지지하는 자들' 이며 예배에 규칙적으로 참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한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제자의 특징을 이루는 모든 외적인 예배행위를 준수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누리는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이 그들의 힘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종교는 단지 정통적인 신조를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에 불과하며, 일련의 외적인 의식들을 완전히 지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사랑과 의지를 지배하는 중심적인 힘을 가진 진리를 찾는 욕구가 거의 없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경험적인 경건함을 유일하게 참된 기독교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아는 것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미혹된 열광주의자요, 점잔빼는 말투를 사용하는 위선자라고 간주한다.
그들도 역시 천국 밖에 있다. 그리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힘인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미혹된 신앙고백자들이 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 30:12).
이런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위에서 서술한 신앙고백자들을 바리새인적인 동정을 품고 바라본다. 이들은 그들 자신이 좀 더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몇 방울의 물만 뿌린 유아 시기의 세례를 믿지 않으며 가장 경건한 신앙고백조차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성경 말씀에 지적으로 동의한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그들이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했다고 확신한다. 아무도 그들의 그 확신을 흔들리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온유함이나 겸손함은 그들의 특징이 아니며, 서로 간에 참아 주고 서로 간에 용서하는 일에 있어서는 문외한들이고, 그들 매일의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와 실제적인 경건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동료들은 그들을 '형제' 니 '자매' 니 하고 부르는데 그들은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내가 생활필수품을 구입할 자금이 없다면 부자라는 명성을 들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질병이 나의 생명기관을 먹어 들어가고 있는데 건강한 사람이라고 불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향하여 천국의 문을 닫아거신다면 어떤 사람의 보증이라 할지라도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