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261]
거짓 선지자들 2(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 혹은 오류를 설교하는 자들에 대한 이 경고는 13, 14절에서의 '좁은 문' 과 '협착한 길'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에 덧붙여진 내용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의 위험은 그들이 꾸민 성품 안에 나타난다. 즉 그들이 '양의 옷' 을 입은 것은 방심한 자들을 미혹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골수 정통파' 에서도 그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들은 영혼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체하나 실상은 구원의 길에 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치명적으로 속이고 있다.
사람들이 이처럼 쉽게 이 사탄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은 선한 행실과 구원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천주교인들처럼) 행위로써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자기의 '믿음의 건전성'을 크게 자랑하면서) 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 중간의 참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자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 중간의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지는 않고, 복음은 율법을 반대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로 인하여 천국 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선한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선한 행실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기도 하고, 그렇기도 하다. 성경은 우리의 이 대답을 보증해 준다.♡
겉으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선한 행실' 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고, 그 다음에는 '필요하다' 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신중하게 설명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극히 중요한, 즉 '구원'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몇 몇 이들에게 이처럼 상세하게 다루는 일이 정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며, 실제로는 단순하고 쉬운 문제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의 처음 질문에 대하여 명백하고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대답하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그들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 2:8, 9)는 말씀을 인용하고 이 말씀이 이 문제를 종결시켜 주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씀을 인용하는 것과 그 말씀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서 2:8, 9의 말씀은 애매모호한 점이 하나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 말씀이 다루는 주제에 대하여 힘든 연구를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 질문을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많은 성도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혼동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좀 더 완전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진리의 균형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 진리의 반쪽을 무시한다면 그 진리는 곡해되고 영혼들은 미혹되기 때문이다. 또 바로 이 점에서 '거짓 선지자들' 이 치명적인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미리 경고받지 않는다면 그에 대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목사는 하나님의 계획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계획' 을 선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한편으로 선한 행실을 성경이 제시하는 자리에서 배제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한 행실'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기독교계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대다수가 이 점에서 치명적으로 미혹되고 있으며 "그들의 오른손에 거짓 것을" 가지고 지옥으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