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161]
염려하지 말라 1(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을 최저의 수준으로 생각해 본다 할지라도 음식과 의복과 같은 것들은 걱정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기껏해야 몇십 년만 지나면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지팡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의복도 지극히 남루한 옷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의 지배를 받는 그러한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사용함으로써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것들을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것들에 만족하는 대신에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참으로 악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백 년 후엔 우리가 호화롭게 살았거나 가난하게 살았거나, 우리가 비단 옷을 입었거나 지극히 남루한 옷을 입었거나 간에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린 양을 먹고 살았느냐 살지 않았느냐, 또는 주님의 의의 옷을 입었느냐 입지 않았느냐에 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그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현세적인 근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열매 맺는 데 큰 방해물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극히 적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교훈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경우이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마 13:22)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가난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재물에 넋을 잃고 있는 것만큼 영적으로 열매 맺는 데 치명적인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회중 가운데는 세속적인 생각과 근심으로 혼란해져 기도도 할 수 없고 말씀도 들을 수 없으며, 그 말씀을 묵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하여 집중하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겨울에 입을 새 코트나 모자를 걱정할 수 없는 것이다.
현세적인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았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걱정을 피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다음과 같은 권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시 55:22),
"너의 행사를 다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리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이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의 직분의 여러 가지 의무를 수행하고 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면제해 준다는 말이 아니라 의무를 수행하고 수단을 이용하고 수단을 이용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일을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복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는 믿음의 실천과, 우리가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고, 또 그분만이 증대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에 완전한 복종이 수반 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