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43] 하나님의 집에 대한 관심(사무엘하 7장)

En Hakkore 2024. 2. 25. 14:57

거룩한 관심

그렇다면 이 휴식기에 다윗은 어떤 일에 몰두했던가? 그는 세상의 하찮은 문제들이나 육적인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골몰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 7:2).

이 구절은 매우 복되며 하나님 자신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 13:22) 하고 선포하셨던 사람의 인물됨에 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여가 시간에 무엇을 골몰하느냐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영성 - 혹은 그것의 부족 - 의 확실한 지표가 될 만한 아무것도 없다.🤞

싸움이 끝나서 칼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영적 관심사들에 대해 느슨하고 부주의해지기 쉽다. 그리고 사탄이 우리와 관련해 유리한 입장이 되는 데 성공하는 것은 바로 그런 때, 즉 우리가 경계를 늦출 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사정이 아주 달랐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첫째, 이 휴식기에 다윗의 동료가 되었던 이가 선지자였음에 주목하라. 이 구절이 우리에게 큰 소리로 외치게 하라! 경건한 동료는 우리가 짧은 휴식을 즐기는 동안 우리의 영성을 보존하는 데 아주 소중한 도움이 된다.

"휴양"(recreation)의 시간은, 만약 우리가 그 시간을 주님과 가까이 살아가는 이들과 경건한 대화를 나누는 데 사용한다면, "재창조"(re-creation)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윗은 그가 했던 다음과 같은 단언(斷言)의 증거를 제공한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시 119:63).

사람은 그가 사귀는 동료에 의해 알려질 뿐 아니라, 그들로 인해 형성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사랑하는이여, 친구를 사귀되 그들의 인격과 대화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과 사귀라. 다음으로 다윗이 선지자 나단을 동료 삼아 자기 궁에 앉았을 때 무엇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주목하라.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이것 역시 다윗의 마음의 생각을 얼마나 잘 드러내는가! 우리는 다윗의 이 말을 느부갓네살의 오만한 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 다윗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도취하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지위에 만족하는 대신 하나님의 궤가 허름한 곳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제 막 왕위에 오른 군주가 자신의 위엄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분의 영광에 대해 염려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 세상에서 큰 물질을 얻은 이들이 그분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다.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로 작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도들의 순례자적 특성이 거의 사라진 이 시대에, 세상과의 구별됨이 과거의 유물이 된 이 시대에, 자기에 대한 탐닉과 모든 변덕을 만족시키는 것이 시대의 조류가 된 이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쇠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자신들의 휴식을 망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들과 가난한 신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문제보다 자기들이 키우는 애완견의 안녕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데보다 자기들의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다. 그러니 오늘날 수많은 곳에서 성령의 불길이 꺼지고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나단의 반응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삼하 7:3)

어떤 이들은 거의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대해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들이 영적 문제와 관련해 자기들보다 앞서 살았던 모든 이들보다 더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일부가 이 경우를 두고 다윗과 나단을 모두 싸잡아 비난해 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리아가 구주의 머리 위에 값비싼 향유를 쏟아 부었을 때 유다가 그녀에게 했던 비난과 다름없어 보인다. 우리의 본문에는 다윗이 실제로 여호와께 성전을 지어드릴 계획을 세웠다는 그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는 아직 그런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기에 불편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나단은 자기가 다윗의 말을 듣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와 상관없이 다윗의 거룩한 관심을 수정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영적 열망을 고무하고자 했다.😇

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열심을 잠재우고, 누군가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고,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향해 자기들보다 더 큰 사랑을 품고 있는 자들을 방해하려 하고 있는가!

나단은 그를 비방해 왔던 자들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왕이 드러낸 그런 이타심과 거룩한 관심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라는 것을 재빨리 인식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다윗이, 그를 헐뜯는 어리석은 자들이 주장하듯이, "율법주의적 정신"(legalistic spirit)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즉각 그를 꾸짖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의 계획을 수정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단은 그렇게 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오, 오늘날 우리에게서 이런 식의 "율법주의"(legality)-여호와의 풍성한 자비로 인해 녹아내리고 그분의 계획과 일을 촉진함으로써 감사를 표현하고자 갈망하는 마음 - 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이 그리스도인을 위한 법이 되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자들이 은혜에 대해 혹은 율법주의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무언가 온당한 생각을 갖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