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39] 미갈의 비난(사무엘하 6장)

En Hakkore 2024. 2. 24. 23:10

사무엘하 6장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빛과 그림자의 혼합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성령의 복된 열매들과 사탄의 악한 활동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런 현상은 자연계에서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자연계에서는 햇빛과 비, 고요함과 폭풍, 여름과 겨울이 번갈아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계에서 목격하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의 외적 표상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서로 정반대되는 강력한 두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마귀가 늘 대치하고 있다. 이것은 개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갈 5:17). 그 결과 그의 경험 안에는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다.

부전여전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기쁜 행사가 벌어진 날이 저물기도 전에, 그의 기쁨은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먹구름에 의해 덮이고 말았다. 그의 집안사람 하나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헌신에 짜증을 냈던 것이다.

그는 다윗의 그런 열정을 독하게 비난했다. 다윗과 가까웠을 뿐 아니라 그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여호와를 향한 그의 열심을 조롱했다. 언약궤에 주어진 영광, 레위인들의 행렬,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기쁨, 그리고 여호와께 드려진 제사 때문에 뱀의 적의(敵意)가 끓어올랐다.

기름 부음을 받은 눈을 가진 자라면 미갈 뒤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의 오랜 적을 찾아내는 일에서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미갈이 다윗을 비난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주님 안에 있지 않은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앞 장은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삼하 6:!5)라는 구절에서 끝났는데, 이 장의 교훈은 "여호와의 궤가 다시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16절)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후의 결과를 통해 살펴보겠지만, 다윗에 대한 미갈의 은밀한 증오는 곧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주님을 즐거이 섬기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람들의 적대감과 마주할 때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한 수고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감사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헐뜯고 비난하는 자들과 부닥치게 될 것이다.

예언자들도 그러했다. 그리스도의 선구자도 그러했다. 영광의 주님 자신도 그러하셨다. 그분의 사도들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그분의 모든 신실한 종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사탄이 무저갱(無底坑)을 벗어나 활동하고 있는 동안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없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삼하 6:16).

안타깝게도 사울은 여호와의 대한 공적 예배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의 딸은 하늘의 일들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집에 "우상"을 갖고 있던 여자가(삼상 19:13) 언약궤에 관심을 두는 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기 남편이 언약궤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 그를 조롱했다.

그렇다.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은 성령의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령의 주관하시는 일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 주 예수님이 곤경에 처한 많은 이들을 치유하시느라 정신이 없었을 때, 그 분의 친족들이 그분을 붙잡으러 왔다.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막 3:21).

사도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이들이 그들을 조롱하며 말했다.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행 2:13). 바울이 아그립바와 더불어 열심히 변론했을 때,아그립바가 그를 향해 말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

사랑하는이여,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부족한 셈이다.

세상은, 만약 그것의 세속적인 평온이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종교를 관용할 것이다. 그렇다, 종교가 그것의 수치를 숨겨 주는 의복을 제공하는 한 세상은 종교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지고한 명령을 제시하고, 그분이 우리의 애정과 생각과 삶에서 최우선순위를 요구하신다고 주장해보라. 그러면 그런 메시지는 즉각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고 주중에는 극장에 다니는, 또 가끔씩 선교단체들에 기부하지만 자기가 고용한 자들에게는 충분한 급료를 주지 않고 고객들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는 입술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관대함이나 명민함 때문에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늘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이 세상에서 낯선 자와 순례자로 처신하며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편협한 사람"이나 "엄격한 사함"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한 성도가 여호와께서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수많은 자들에게서 모욕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 슬퍼하거나, 또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그분을 섬기며 즐거움에 겨워 춤을 출 때, 그는 광신자라는 딱지를 얻을 것이고, 주님을 향한 그의 순전한 마음 역시 그와 비슷하게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