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2024. 7. 14. 11:01

율법과 보복 1(마 5:38-42)

"너희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의 법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몹시 곡해되었다. 그들은 그릇된 적용을 함으로써 그 요지와 의도를 왜곡하였다.

이 법규를 법정의 재판관들에게 한정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규례로 만들었던 것이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법을 각 개인의 수중에 두셨고, 각자의 손해를 보복하도록 허용하셨다고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이 법규가 각 사람이 적에게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으로 인가한다고 공표하였다. 만일 이웃이 너희를 치고, 네 한 눈을 멀게 하거든 그에게 가서 똑같이 행하라. 이와 같은 저항의 정신이 마음에 품어졌고 보복 행위가 용납되었다.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으리라 분명히 재판관의 판결을 위해 세워진 이 법을 어떻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눈에 뜨게 왜곡하기에 이르렀는가? 이에 대해서,

첫째로, 사람은 사적으로 손해를 입었을 때 자신이 개인적으로 보복하고자 함이 자연스러운 발상임을 지적하겠다.

둘째로, 그에 대한 대답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본성적으로 대단히 강한 보복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자 애쓰며 이 악한 욕구에 영합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귀의 사역을 볼 수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마귀의 정책은 하나님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큰 원수인 마귀는 세속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진실한 경건이 무너지도록 사람들의 여론과 타락한 경향을 조절하기 위해 타락한 지도자를 물색해 왔다.

유대인들의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세속적인 정신자세를 알아챔으로써, 마귀는 유대인의 교사들로 하여금 영적 축복보다는 오히려 현세적인 것을 베풀어 줄 메시야를 꿈꾸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의 구속을 설교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라고 권면하였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경멸하고 거부하였다. 이탈리아인들은 고대의 기자가 증언하였듯이, 일찍이 마술과 우상 숭배에 집착하고 있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신약시대의 여명기에 참된 복음을 허용하셨건만, 미신에 대한 그들의 본성적인 기질을 알아챈 마귀는 이내 그들 사이에서 진리를 타락시켰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 내에 그곳 교회는 그들이 이교도였을 때만큼이나 많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간악한 전술을 마귀는 프로테스탄트들에게도 사용하여 왔다.

그 지도자들의 입에서 교리를 타락시키는 데 실패한 마귀는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단지 악한 성향을 따라 응하도록 함으로써 그들 사이에서 교리를 크게 약화시켰다.

바로 이 점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들은 마귀의 수하들과 뚜렷한 대조를 보여준다. 마귀의 수하들은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그들은 여론이라는 바람에 자신들의 돛을 조절한다. 그들의 설교는 청중의 타락한 취향에 맞춰진다.

그들의 발언은 단순한 동기에 따라서, 즉 자신의 봉급을 지불하는 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조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들은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신고하기를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인의 취향에 맞지 않든, 싫어하는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히 진리를 왜곡시키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 중 어떠한 부분도 철회하기를 거부한다. 주인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위임하신 신임에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관심사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헤아림대로, 그분께 측정함받은 대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39절). 이 절과 이하 세 절에서 그리스도는 서기관들이 모세의 법규를 그릇되게 적용한 사실을 논박하고 계시다.

주님의 이 권고들은 이러한 견지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사악하고 부당한 사람들이 가하는 어떠한, 아니 모든 피해에 대해 수동적으로 감내하라고 전적으로 권고하고 계신다고 말한다면, 우리 주님의 말씀에 그 문맥이 맞지 않는, 그리고 다른 구절이나 여러 중요한 고려시힝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분이 논박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하는 그 방법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해 주는 다른 증거들은 다음 장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