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33] 언약궤를 찾아옴(3)(사무엘하 6장)

En Hakkore 2024. 2. 24. 16:02

두 종류의 두려움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 오리요"

여호와께서 언약궤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방법에 관해 그토록 귀하고 분명한 지침을 주신 상황에서 다윗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가? 더 이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가 자신의 행동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났을 때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호와의 미소가 찡그림으로 바뀔지라도, 우리는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절망적인 사악함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오만함에서 떠나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시는 것에 대해 더욱 놀라야 하고, 잘못을 범한 형제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삼하 6:10).

지금 우리는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대신 자신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저버리는 것(욘 2:8)을 보고 있다. 언약궤는 여호와의 분명한 임재에 대한 상징이었고, 따라서 그분의 성도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마땅히 그것을 바라고 갈망해야 했다.

모세는 이런 사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께서 친히 가지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아,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를 즐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순종의 길에 서야 한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는 계획을 포기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종하는 길에서 벗어났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여호와를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그런 죄의식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적절하고 영적이며 훌륭한 두려움이 있는 반면, 해롭고 인간적이고 가치 없는 두려움도 있다. 후자는 노예가 주인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고, 전자는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서운 생각 때문에 발생하는 노예근성의 두려움이 있는 반면,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숭고한 생각 때문에 발생하는 거룩하고 칭찬할 만한 두려움도 있다.

전자는 악에 대한 인식 때문에 발생하는 공포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한없는 온전하심에 대한 올바른 생각 때문에 나타나는 경외감이, 전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느꼈던 - 그때 그는 두려워서 몸을 숨겼다 - 두려움 혹은 마귀가 하나님이 계신 줄 "믿고 떠는"(약 2:19) 두려움이다.

반면에 후자는 아이들이 존경하는 부모에 대해 품는 두려움, 즉 은혜로우신 분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고자 하는 두려움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고통인 반면, 후자는 우리에게 보화와도 같다. 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두려움이고, 후자는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두려움이다.🤞

전자는 절망으로 이어지고, 후자는 경건한 활동으로 이어진다(히 11:7). 전자는 죄의식의 산물이고, 후자는 교화된 마음의 열매다.

하나님에 대한 생래적 두려움과 영적 두려움이 있다. 전자는 마치 노예가 잔인한 주인에게 하듯이 하나님을 증오한다. 후자는 마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그분을 존경하고 경외한다. 전자는 하나님의 권능과 진노 때문에 그분을 무서워한다. 후자는 그분의 거룩하심과 주권 때문에 그분을 숭배한다.

전자는 구속을 낳고, 후자는 예배를 낳는다. 온전한 사랑은 전자를 내쫓는다(요일 4:18).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은 후자를 더욱 촉진한다(고후 7: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그분과 동행할 경우 자녀가 아버지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법을 떠나 죄의식이 우리를 괴롭힐 경우 노예가 주인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분의 진노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는 그분의 임재를 편하게 여기지 못하고, 그분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보는 대신,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엄한 주인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다윗의 상황이 그러했다. 웃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놀란 그는 더 이상 언약궤와 상관하기를 두려워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