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2024. 7. 5. 11:57

영화롭게 된 중보자 - 모세 3(출애굽기 34:28-35)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출 34:30).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세 번째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물론, 그 자신 개인으로는 그를 통하여 나타난 영광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였다. 그리스도의 두 사도가 유대 사람들의 산헤드린 앞에 섰을 때에도 이와 같았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행 4:13).

오! 그분의 인상을 우리에게 남기지 않고는 거룩하신 이와 오래동안 동반할 수는 없다. 주께 전적으로 헌신된 자에게는 그의 옷섶에 어떤 배지(badge)나 단추를 달거나 입술로써 "승리의 삶을 살고 있다"고 선포할 필요는 없다.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함은 여전히 진리이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에 대한 모형적 의미는 고린도후서 3:7에 주어져 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이에 대하여 어떤 이가 이르기를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을까?

그의 얼굴에서 비취는 바로 그 광채가 그들의 심령과 양심을 살폈기 때문이니 - 그들의 어떠함, 죄인의 상태, 그리고 곧 시행하려는 언약의 요구 가운데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그들로서는 준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득이 정죄와 죽음의 직임이 되었던 것은 그것이 그들이 행할 수 없는 공의를 요구했으며 또 그것을 행하기에 반드시 실패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죄를 선포하고 범죄에 대한 벌, 곧 죽음 아래로 그들을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본 그 영광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성을 표현한 것 - 그들이 그 자체의 기준과 일치함을 구하였던 거룩성 - 이었으며, 그것은 이제 성립된 그 언약의 위반에 대하여 변호해 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워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모세가 나온 바 그 임재 앞에 감히 설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Ed. Dennett).

모형적으로(세대주의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맺은 언약과 십계명을 새긴 돌판들은 다가올 날에 그가 이스라엘과 맺으실 새 언약을 예시하였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4-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4).

영적으로 말하자면, 이사실은 심지어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익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영의 운행 아래에서 우리의 심령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해력이 풍부해졌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3장의 서두에서 한 말씀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은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 이었다. 그들의 심령은 거룩하신 사역에 의하여 감수성이 예민하게 되며,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붓으로 사용하여 그들 위에 쓰실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모든 표를 새기었다.

그러나 그 쓰여진 것은 중보자를 통하여 새언약의 은혜로 드러나신 하나님의 지혜였음과 같이, 성도들의 심령 속에 '그들이 모두 나를 알리라' 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계속해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에 의하여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 으로 쓰는 새언약의 직분에 합당한 자로 말한다"(C. A. Coates).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