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125] 언약궤를 찾아옴(1)(사무엘하 5-6장)
언약궤에 대한 관심
다윗이 블레셋에 대해 승리를 거둔 후 우리가 그에 관해 듣는 다음 이야기는 그가 언약궤에 대해 표명했던 거룩한 관심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관심이며, 우리의 영웅의 깊은 영성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또한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잊혀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언약궤는 성막에 속한 여러 가지 거룩한 기물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그 궤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1-22).
진정한 왕의 현존에 대한 그 오래된 상징은 여리고 성벽 주위를 돌았던 날 이후 여러 가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사사들이 통치하던 타락한 시대에 미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그것이 어떤 마술적인 마스코트라도 되는 양 전쟁터로 끌고나갔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의 그런 불경건한 기대를 조롱하셨다.
하나님의 궤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승리감에 도취된 블레셋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들의 도시로 가져다 다곤 신전에 안치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셨고, 그 궤는 낙심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왔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그것을 맞이했다. 아, 그러나 그후에 그들은 불경건한 호기심에 발동해 그 거룩한 궤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다"(삼상 6:19).
그후 그 궤는 기럇여아림이라는 한적한 산지로 옮겨져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었다. 거기에서 그것은 50년 넘게 방치되었다. 사울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궤 앞에서 묻지 않았다"(대상 13:3). 그러나 다윗은 젊은 시절부터 여호와의 보좌에 가해진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로 인해 깊이 고민했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여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벌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시 132:1-6).
그는 여호와께 예배할 수 있는 장소, 곧 그분의 임재의 상징이 안치되고 거기에서 그분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의 진노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도 자기가 과거에 했던 맹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즉시 그 맹세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삼하 6:1-2).
의심할 바 없이 다윗은 지금 전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고서, 그리고 그분으로 인한 기쁨에 넘쳐서 그렇게 했다(5절을 보라). 의심할 바 없이 그는 그 궤가 그것에 합당한 명예를 얻을 때 따라올 축복을 예견하면서 밝은 미래를 전망했을 것이다.
아, 그러나 그런 소망은 얼마나 크게 곤주박질치고 말았는가! 그 노력의 결과는 참으로 슬펐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외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느라"(삼하 6:3-8).
이 구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매우 엄중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아, 그럼에도 그것들은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서 광범위하게 무시되고 있다.
"언약궤를 불명예스러운 장소에서 찾아오는 것, 그것을 다시 이스라엘의 품속으로 가져오는 것, 다시 한 번 그것을 이스라엘이 찾아가 여호와의 뜻을 묻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최고의 통치와 능력을 상징하는 장소인 시온 성에 안치하는 것 - 바로 그런 것들이 다윗이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의 통치권을 내어드리면서 자신의 왕직을 수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거듭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워야 한다. 즉 그들이 어떤 올바른 목적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들이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B. W. Newton).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삼하 6:3).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자신의 열심에 취해 있던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옮길 때 따라야 할 절차에 관해 아주 분명한 지침을 주셨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영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칸 막는 휘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민 4:5-6).
거룩한 궤는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겨져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상세한 지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가 이니었다.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 7:9).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언약궤는 감추어져야 하고, 언약궤 사방 모서리에 달린 고리에는 채가 꿰어져야 하고, 고핫 자손들이 그것을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새 수레"(삼하 6:3)에 싣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고안(考案)이었고, 여호와의 지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다윗의 소원은 거룩했고 그의 동기는 순수했다. 그러나 그는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수행했고 그 결과는 무서웠다. 여호와의 일을 하는 두 가지 방식, 즉 우리가 그분을 섬길 때 처신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처방된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경향을 따르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의 경우를 본보기 삼아 따르는 것이다 - 사실 어느 쪽이든 그 결과는 같다. 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후자를 따르고 있는가! 얼마나 자주 옳은 일이 잘못된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는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