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366]
시내산 언약 3(출애굽기 34:22-27)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출 34:22).
이스라엘의 각 '절기' 에 대한 중심 사상은 백성들로 하여금 대속에 근거하여 여호와께로 모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관점은 공동의 책임을 말하며, 더 나아가서 공동의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를 중심하여 절기의 모임에 함께 모여 즐기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이 없기 때문이다.♥
레위기 23:15-21에서는 '칠칠절'('오순절' 로서 더 잘 알려졌음)을 아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를 "맥추의 초실절"과 관계하여 설명하였다. 이 사실은 다음에 기록된 야고보서 1:18의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세대주의적으로 말한다면, 이 절기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의 부분적 성취를 경험하였다.
우리는 성령강림의 '부분적 성취' 에 대하여 베드로가 사도행전 2:16에서 말한 바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라는 말씀을 오히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의 성취니" 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 표현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인 즉 사실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의 온전한 실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위기 23:17의 "두개의 떡" 은 그리스도의 지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모인 이유인과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세대가 끝나면 유대인들이 다시 한 번 거룩한 은총 가운데로 다시 회복될 이스라엘의 두 집의 재결합(비교, 겔 37:16)을 예시하였다.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 34:22).
이것은 '장막절'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교 달력의 맨 마지막에 있다. 그러므로 그 세대주의적 성취는 아직도 미래에 있을 일이다. "그 장막절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인하여 거하게 되었던 광야에서 나온 때 곧 천년왕국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또 다른 주간의 첫날이 더하여질 것이다(레 23:36의 제 팔일) - 주 예수와 함께 일어난 자들의 부활의 기쁨(그것에 대해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그동안 응답하였음).
결과적으로, 땅에 편만한 자들을 한데 모은 뒤에 장막절이 다가왔음을 알게 될 것이요,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추수뿐만이 아니라 포도의 수확이 있은 뒤, 곧 심판으로 그들을 구별하고 땅에 최후심판을 집행하는데, 그때 하늘과 땅에 있는 성도들을 다 함께 모을 것이다"(J. N. Darby).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출 34:23).
이들이 특별히 구별된 세 경우는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 이었다(신 16:16). 이 절기들은 세대주의적 견지에서 세 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구별된 때이다.
둘째, 현재 우리가 처한 중간 기간으로서, 아브라함의 양 떼로부터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롬 11:5)들을 더하시며, 하나님은 또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신다"(행 15:14)고 하신 때이다.
셋째, 주께서 돌아오셔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실 때"(행 15:16, 17) 곧 천년왕국 때이다.
하나님의 삼위의 신성이 이러한 절기들 안에서 독특하게 고찰되어진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다. 유월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무교절은 성자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칠칠절 또는 오순절은 성령님의 강림으로 지목되는 절기이다(행 2:2; 욜 2:28).
장막절은 종종 드리는 간구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라가 임하시오며"(비교, 마 13:43; 16:27)라고 일러주신 기도의 응답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그 순서는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세 가지 비유와 동일한데 이는 곧 목자의 사역, 성령의 사역, 아버지의 집으로 옮기는 사역과 같다. 이처럼 그것은 실험적으로 입증된다.
우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절기' 들은 공동의 책임뿐만 아니라 공동의 특권과도 관련되어 있으니, 이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라고 하심과 같다. 그러나 오호라!, 역사는 동일한 일을 반복하였다.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시초는 단합된 '회중' 이었다. 이 시대의 시작도 그와 같았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행 2:44)라고 함과 같았다. 당시에는 모든 일들이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패와 죄악이 들어옴으로 거룩한 이의 징계와 심판이 뒤따랐는데, 이 점에 있어서 이스라엘이나 기독교계가 다를 바 없다.
결국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처럼, 모든 '흑암의 시대' 를 통하여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비밀의 바벨론' 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오고 이스라엘도 참된 하나님의 경배자로 회복되었으나 그 원래의 영광을 따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있었고, 남은 자들도 교황권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높임을 받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물줄기는 그 시작과 함께 정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마지막에서, 이스라엘의 공동의 간증은 완전한 파멸과 황폐함이었다. 즉 제사장들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으며"(말 2:8), 더럽혀진 떡을 하나님의 단에 드렸다(말 1:7). 유다는 여호와의 거룩함을 욕되게 하였기에(말 2:11),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고 말씀해야만 하였다.
동일하게도, 기독교계의 공동의 간증은 폐허로 전락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교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는 그리스도를 밖에 있는 분으로 묘사하였고(계 3:20), 그의 음성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라고 하심과 같이 개인에게로만 한정되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