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349]
지극한 자비 4(출애굽기 33:18-23)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2:20).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절대적 성품과 그분 자신을 알게 하는 상관물 사이를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의 절대적인 성품과 본성은 아무도 본 일이 없고 또 볼 수 없으니, 이는 그가 '영' 이시기 때문이고(요 4:14), 그러므로 비가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의 여러 가지 이름과 명칭에 의하여, 그의 많고 다양한 속성을 나타내심에 의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에 의하여 또 그 안에서 보다 상세하고 복되게 알려 주셨다.
그러나 아직도 절대적인 진리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비가시적인 하나님으로서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이시다"(딤전 6: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과 같은 자들에게 자신을 친히 나타내신 구약시대는 삼위 중 두 번째 위가 되시는 자로 나타나셨으나, 여전히 그의 신성한 요소에 속한 것으로 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이나 천사의 형태로 나타내 보이셨다.
그 어떤 인간 피조물도 그의 모든 위엄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계신 무한하고 영원한 성령을 감지할 능력을 가진 자는 없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시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1-23).
이는 참으로 복되다. 사악한 인간이 무한히 의로운 거룩한 하나님의 신성한 완전하심을 분명하게 고찰하려면 그를 안전하고 평화스런 곳에 둘 필요가 있다. 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한하신 비하와 은혜로 이를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주셨다. 그리스도는 믿음의 '반석' 이시다.♥
어거스틴 토플레디(Augustus Toplady)는 잘 알려진 그의 찬송 가운데서 이를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이를 바꾸어, "만세 반석 열리니 은혜로 나를 주 안에 안전히 감추어 주셨네" 라고 노래하는 것이 더 좋게 보인다.
하나님은 모세가 감당할 수 있도록 그의 임재의 느낌과 지각력을 은혜롭게 허락해 주셨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견해에 대한 한 아름다운 실례를 성령님에 힘입어 기룩한 커일러(Dr. Cuyler) 박사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는 며칠 전에 그리스도에 대해 완고한 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왜 나는 그에 대하여 당신이 느끼는 것처럼 느끼지 못합니까? 나는 성경을 꽤 많이 읽었고 설교도 많이 들었지만 당신이 너무도 많이 이야기하는 이 구세주에 대하여 아무런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소'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당신의 말을 듣자니 수년 전에 화이트 산(White Mountains)에 간 일이 생각나더군요. 우리는 그곳에 놀라운 자연스런 조각품, 곧 화강암 절벽에 인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소. 그것을 보려고 거기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절벽이었을 뿐 거기엔 아무런 인간의 형태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에 들을 것과 같은 모양이나 그것과 비슷한 모습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소.
우리가 실망하고 돌아서려 할 때 마침 안내원이 와서 하는 말이, "당신은 올바른 지점에서 그것을 보지 않았어요' 라고 하며 우리를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제 돌아서서 보세요' 라고 했소. 그래서 돌아서서 보니 우리 얼굴처럼 분명하고도 아주 큰 얼굴들이 거기에 있었소.
우리가 올바른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다만 모서리난 암벽만 보았을 뿐 균형 잡힌 얼굴은 볼 수 없었소. 그 형태와 아름다운 장면은 관찰하는 방향에 달려 있소.
나의 친구여, 당신에게도 이와 같소. 나와 함께 십자가의 그늘 아래로 갑시다. 뉘우치는 죄인이 되어 그곳으로 갑시다. 다른 어느 인간보다 더 상한 그 얼굴을 바라보시오. 가시관을 쓰시고 피로 물든 그 얼굴을 보시오. 고난 당하는 자는 당신을 위하여 죽어가고 있으며 당신은 그분 속에 당신의 영혼을 황홀케 하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요.'"
21절의 말씀과 22절에 언급된 말씀을 서로 연결하면, 신자들의 절대적인 보장에 대해 아름답게 완성된 모형을 얻게 된다.
첫째,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고 하신 말씀은 곧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롬 5:1, 2)라고 하신 말씀이다.
둘째, 자음의 말씀을 잘 살펴보라.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라고 하신 말씀인데 죄인은 그 누구나 스스로 이렇게 할 수 없다. 축복받은 사람의 모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자"(엡 2:10)로 택함 받은 영혼에 속한다.
셋째,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라고 하신 말씀인데 시편에 이르기를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라고 한다.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손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요 10:29).♡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석 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선하심' 이 우리 앞을 지나감을 살펴본다(출 32:22). 그의 '영광' 은 육신이 모두 감추어졌을 때,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이 되었을 때에만 우리가 볼 수 있게 나타난다.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불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3).
이것은 율법적 통치를 준수하는 일이었다. 즉 율법은 다만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다"(히 10:1) 그러나 이와 대조되는 사실은 얼마나 복된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러한 하나님과 또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를 통하여(요 14:9), 하나님 자신에 대한 그 같은 제사(딤전 3:16)에 합당하게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 ♥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