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345]
풍성한 은혜 5(출애굽기 33:11-17)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게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6).
모세는 지금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의 탁월하고 제한할 수 없는 은혜(다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부족에 의하여 그 경계가 한정될 뿐인 은혜)이다. 그것은 그가 호소할 수 있는 모두이기는 하였지만, 다음 구절에서 이르시는 바와 같이, 그것은 충분했다.
즉 그의 간구는 헛되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의 사악하나마 회개하는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나와 주의 백성" 이라고 두 번이나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를 예시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이스라엘에 대한 모세의 강렬한 사랑은 그들을 자신과 함께 묶어, 하나님 앞에 있는 그의 은총의 자리에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 그들을 더 높게 세워서,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 자신의 근거에서 다루었고,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이 그분을 거절하자, 모세에게 이르실 때에 '네' 백성이라고 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세가 중보자로 활동하면서, 하나님이 들으시도록, 그는 또다시 '주의 백성' 이라고 말한다"(Ed, Dennett).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는 참으로 중요한 구절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 것은 그의 백성이 아닌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구별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이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 그러나 다시 이에 대한 복을 받은 여기의 모형적 모습으로 되돌아가자.
"그는 이와 같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사실이 그러하듯이, 거룩한 은총의 증거 - 은총과 회복 -로 간주되었다. 그가 임재해 계시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이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구별되었음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세대에 있어서도 그 원칙은 마찬가지다.
땅 위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므로 하나님을 위한 처소 안에 그의 백성을 세우고, 그들을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구별하니, 그 결과 다만 두 가지 현상만이 있으니, 곧 성령님의 임재와 그 활동의 영역과 사탄의 활동과 그 능력의 영역이다"(Ed. Dennett).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 33:17).
모세의 간구는 완전히 달성되었다. 이 여호와의 말씀은 14절에서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그분 자신의 대답이 되었다. 그것은 곧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이것은 그의 종의 간청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대답하신 것이었고, 또한 그것은 그의 마음에 확신을 위하여 필요한 전부로서, 그들이 광야를 횡단하는 일에 이스라엘의 안전에 보장이 되었다.
그것은 순전하고 단순하며, 지고하고 오래 참는 은혜였다. 은혜는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위반한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것이었다. 은혜는 중보자의 주요한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 수여되었다. 이에 대한 언급은 먼 훗날 여호와께서 어떤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곳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니라"(렘 32:2).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되심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우리가 이 땅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내가 친히 가리라"고 하신 동일하고 소중한 보증을 우리에게도 하셨다. 행로가 어떻게 거칠더라도, 길로 인하여 당하는 시련과 실망이 그 어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신다"(시 46:1).
오! 믿음으로만 이를 깨닫게 되는도다. 오! 믿음으로만 그렇게 의지하여 행한다 - 항상 임재하시고, 모든 일에 족한 그리스도가 우리 편에 있다. 이러한 즐거움과 능력 가운데서 살지 아니하고 얼마나 우리는 스스로 별다르게 행동하는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사 41:10).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그는 바벨론의 풀무 가운데서도 세 사람의 히브리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이렇게 외치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그러하도다. 그가 친히 약속하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고 한다. 그의 이름 위에 찬양과 영광을 돌릴지어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현재에 여호와의 임재가 있다는 것과 미래에 대한 '안식'을 보증하셨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복된 약속이요, 영광스러운 전망이로다!
'안식'은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히 4:1)이요, 죄로부터의 안식, 수고로부터의 안식, 그리고 슬픔으로부터의 안식이다.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 소망 가운데서 지금이라도 누릴 수 있음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이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순례자들이여 허리를 동여매시라. 이 광야의 여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로다. 수년만 더 있으면 아마도 한순간에 수고와 괴로움은 끝나고, 피곤한 자에게 안식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옛날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음 같이 그가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사 63:9). 이것은 은혜요, 그들의 모든 죄 위에 넘치는 은혜이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이 이시다.
우리의 심령이 그를 사모하며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그에게 찬양을 돌리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