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332]
이스라엘의 재앙(출애굽기 32:28-33:3)
지난 장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 온 사실과 그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목격한 것과 또한 레위 족속들에게 다음과 같은 단호한 일을 명한 일로 그 끝을 맺었다.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그들의 응답에 있어서, 여호와의 거룩한 요구가 모든 현실적이고 감상적인 사고를 제압하면서, 영이 육신을 이겨내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이르시기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 32:28, 29)고 한다.
위의 구절들은 몇 가지의 매우 충격적인 대조를 제공한다.
첫째, 창세기 34:25, 26에 기록된 것을 보면 거기에서도 역시 레위인들의 손에 '칼' 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분노에 의해서였다. - 비교, 창 49:5-7,
둘째, 출애굽기 28:41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아 여호와를 섬길 수 있도록 성직에 임명되는 것(성별)을 본다. '성별하다' 는 말의 뜻은 "손에 채우다" 이며,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나타나야 할 때 향내 나는 제물과 향료를 가지고 있음을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그들의 손은 칼이 가득하여, 배교했던 자들을 죽인 것이다.
셋째, 사도행전 2:41에 기록된 것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한 날에 '약 3천명의 사람' 이 쓰러진 것처럼, 오순절 날에 '약 3천명의 영혼' 이 구원을 얻었다. 이어서 일어난 대학살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베푼 것으로 알려진 불가항력적인 능력에 의하여 공포에 질리고 무서워 떨었으며, 그들 위에 있는 산에서 위협하는 구름을 보면서, 백성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들 중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그 밤에 죽었다. 죄악의 날은 탄식과 재앙으로 끝났다. 아침에 불경한 쾌락과 방탕한 노래가 울려 퍼졌던 그 진영은 신음소리와 탄식으로 가득하였다. 주검은 매장되기를 기다리며, 상처받은 자들은 고통으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은 침울에 잠겨 있었으니, 죄에 대한 뉘우침이 아니더라도 무서움 때문에, 여호와로부터 진노가 공포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사악한 백성들을 치려고 파괴하는 천사가 칼을 높이 들고 나타나지 않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그 악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엄하신 목소리로 명하신 율법을 듣고 그 모든 것을 준행하리라고 약속한 뒤에 그의 임재의 기미가 채 가시기도 전에 경솔하게 우상 숭배와 음행을 일거에 행했다"(G. H. Pember).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모형)가 되고"(고전 10:11), 즉 우리를 위한 모형이다. 하지만 이 '모형'은 우리가 모방하기 위한 전례나 본보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고후 10:4), "영에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병기로사 문자적으로 칼을 제공하는 장소는 아무 데도 없다.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에게 물리적 세력을 사용할 것을 보장하는 것으로 호소하는 것은 성경을 곡해하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 그들과 연관된 물질적 요소들은 우리에게 관여되는 영적인 일들의 모형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레위 족속들에게 맡겨진 이 엄숙한 사명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이 되는가? 그 대답은 명백하지 않은가? 하나님을 불경하게 하는 모든 일들, 우상 숭배의 기미가 보이는 모든 것들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가차없이 다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칼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다. 우리는 그 칼로써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그 머리를 드는 모든 원수를 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 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패시키는 모든 영향력을 향하여 뽑아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형제들,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을 취급한다는 것은 매우 가혹하게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여호와께 성별하여 그의 복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다. 주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일에 대한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결단해야 할 일은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특별한 성별이라고 해서 당신과 거의 무관한 사람들에 대하여 칼을 뽑아야 할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주님에게 속한 것이 아닌 영향력들(심지어 당신을 중요시하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그런 것들 안에서도)에 반대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커다란 축복을 보장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길은 그러한 일에 절대적으로 대적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당신은 폭이 좁고 무자비하며 편협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관점에서 만나볼 때, 그것 때문에 당신께 감사하리라"(C. A. Coates).
앞에 있었던 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 레위 족속들은 그 당시의 '이기는 자들'(overcomers)이었고, 또 요한계시록 2, 3장을 참고해보면, 이 장들에 기록된 모든 축복들이 이 이기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레위 족속들이 그들의 충성에 대하여 풍성한 보상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신명기 33:8-10에 이르시기를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므로 말미암음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라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육체와 함께 그 '정육과 탐심' 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며(갈 5:24), 타고난 관계를 무시하며, 본성을 따라 사람을 알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준행하는 일에 대해서는 심지어 그들의 친 형제마저도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켰으므로 이 지파에게 '둠밈'과 '우림', 즉 가르치는 은사와 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특권을 주셨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를 높이는 자를 높이며 그를 경멸하는 지를 가볍게 여긴다.♥
Arthuw W. Pink 출애굽기 강해 p 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