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19] 블레셋에 대한 승리(1)(사무엘하 5장)

En Hakkore 2024. 2. 23. 13:26

여부스 족속을 정복함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하매"(삼하 5:6).

"만약 멜기세덱이 다스리던 살렘이 예루살렘이었다면[시편 76:2에 의하면 이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곳은 아브라함 때부터 유명한 곳이었다. 여호수아는 그곳이 가나안 남방의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수 10:1, 3]. 그곳은 베냐민의 기업이 되었으나[수 18:28], 유다 땅과 인접해 있었다[수 15:8].

그 후 유다 자손들이 그곳을 빼앗았으나[삿 1:8], 베냐민 자손들은 그들 가운데 거주하는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삿 1:21]. 그리고 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 이제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들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수행한 첫 번째 일이 여부스 사람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도시는 베냐민 지파에게 속해 있었기에 그는 사울 집안에 충성하던 그 지파가 자기에게 굴복하기 전까지는 그런 시도를 할 수 없었다"(Matthew Henry).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삼하 5:6).

이 구절의 하반절의 표현이 약간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번역보다는 '컴페니언 바이블'(The Companion Bible)의 번역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이 구절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너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이 너를 물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한 조롱의 말이었다. 여부스 사람들은 자기들의 산성이 난공불락이라고 확신했기에 자기들 중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라도 그 도시를 다윗과 그의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여부스 사람들은 당시 예루살렘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그리고 시온 산성을 점유하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유다 지파는 그들을 내쫓는 데 실패했고(수 15:63), 훗날 베냐민 자손들 역시 그 일에서 성공하지 못했다(삿 1:21).

그들은 자기들이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다윗이 그들의 산성을 탈취하려 했을 때 그를 조롱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적들이 그들에게 패망이 임박했을 때조차 자신들의 힘을 얼마나 크게 확신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예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구원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그들을 마치 불속에서 타다 남은 것을 꺼내듯 구해내시기 직전까지 그들의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오전 11시 경에 구원을 받았던 죽어가던 강도의 경우가 그러했고,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의 경우가 그러했고, 자살하기 직전의 빌립보 감옥 간수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다.🤞

시온 산성의 탈취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으니 이는 다윗 성이라"(삼하 5:7).

시온은 예루살렘 남서쪽 외곽에 위치한 가파른 언덕이다. 그 위에는 예루살렘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가 있었다. 시온은 두 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다. 하나는 모리아로 훗날 그 위에 성전이 세워질 봉우리다.

시온은 아주 가파르고 밖으로부터의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마치 작은 지브롤터(Gibralatar, 스페인 남단 지중해 연안의 폭이 좁은 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식민지-역주)처럼, 이스라엘의 적들의 수중에 안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지리상의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여부스 사람들의 조롱에 찬 확신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해 이후로 계속 존재하게 된 예루살렘 성읍의 창설자가 되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으니 이는 다윗 성이라."

전에 그는 "헤브론에서" 유다를 7년 넘게 다스렸다(5절). 그러나 이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자신의 왕궁의 수도 후보지로서 예루살렘을 주목했다. 그러나 시온의 고지대는 호전적인 여부스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후 행한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적들의 손에서 산성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 후 다윗은 정복자로서 그곳 산성에 거주했고(대상 11:7), 그곳에 왕궁을 지었고, 그곳에서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전역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했다.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삼하 5:9).

밀로는 공화당이나 의사당, 즉 공공 집회를 위한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왕하 12:20과 대하 32:5 참고). 다윗은 밀로 주변에 그의 수도 혹은 통치 본부가 된 건물들을 세웠는데, 이것은 그가 주관하는 공식 회의를 위한 장소가 되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운명의 조류가 바뀌었고, 전에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던 추방자가 이제 적들을 제압하고 통치 영역을 확대해 가면서 큰 권력과 명성과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든 성공과 번영은 전적으로 여호와께서 강력하게 그의 편에 서신 탓이었다. 그분의 능력 주심이 없다면 우리 중 아무도 그 어떤 선한 일도 이룰 수 없다(요 15:5).👏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50

• 열왕기하 12장 20절.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 역대하 32장 5절.
"히스기야가 세력을 내어 퇴락한 성을 중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성의 밀로를 견고케 하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