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14] 통일과 정복(사무엘하 5장)

En Hakkore 2024. 2. 23. 13:20

즉위 (2)

오랫동안 쫓겨 다니던 추방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주된 적들은 죽었고, 이제 그는 이스라엘 왕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가 이 책의 주제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 건너뛰었던 사무엘하의 처음 몇 장들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영웅의 인품에 내포된 사랑스러운 특징들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관대함이 깃든 슬픔을 보였다(삼하 1:17). 그는 그 배교한 왕과 그가 사랑했던 아들을 자기와 왕국 사이를 가로막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흔히 관용이 부족한 자들이 그렇게 하듯이) 왕위가 비어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한 것을 생각하며 크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다(삼하 1:20).

그는 자신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조차 서둘러 자기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고 경건하게 여호와께 물었다(삼하 2:1). 그는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는 그 결정적인 시기에, 즉 그가 오랫동안 소망하던 것이 이루어질 때가 찾아온 듯 보이는 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목자께서 자기를 이끌어주시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생래적(生來的) 충동을 억제하면서, 신속한 행동을 취해 나머지 반대파들을 제압하기를 거부하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추종자들의 조급한 야심을 억누르면서 하나님이 주실 말씀을 기다렸다.

다윗이 그의 오랜 박해자가 더는 자기를 괴롭힐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했던 것만큼 기쁨 가운데서 자기를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되게도 그는 자신이 일찍이 했던 맹세를 이행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시 59:9).

사울이 죽기 전에도 다윗의 군사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왕국이 처한 혼란과 불행을 피해 도망쳐 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울 자신이 속해 있던 베냐민 지파까지도 다윗에게 이름난 군사들을 보냈다. 그것은 사울 왕의 기울어가는 운명을 보여 주는 확실한 징표였다.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은"(대상 12:8) 므낫세와 갓 지파의 단련된 사내들이 다윗의 군대에 합류하고자 했고, 다윗 자신의 지파에서도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22절).

확실히 다윗은 그런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왕의 흩어진 군대를 쉽게 그리고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왕관을 얻기 위해 그 어떤 방법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역사해 주시기를 기다렸다!🤞

관용과 인내

다윗은 헤브론에 정착한 후에도 전과 동일하게 신실하고 인내심 있는 정책을 견지했다. 며칠 혹은 몇 주 정도가 아니라 7년 이상이나 그렇게 했다. 역사의 기록은 다윗이 무력으로 왕국을 얻으려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군대를 해산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을 헤브론 인근 마을에 정착시켜 가정 생활을 하게 했음을 보여 준다.

그가 처음으로 부분적인 군주의 자리 오른 것 역시 그 자신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찾아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던 "유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위를 통해서였다(삼하 2:4).

그 후에 사울의 조카 아브넬의 주도로 다윗에 대한 미약하지만 지루한 반대가 이어졌다. 반대자들은 죽은 사울 왕의 무능한 아들 이스보셋-그의 이름의 의미는 "수치의 사람" 이었다-을 중심으로 다시 모였다.

우리가 젊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보낸 7년의 시간과 관련해 알고 있는 짧은 이야기는 그를 매우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한다. 사울이 죽은 후 그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의 특징이었던 자애로운 기질은 사무엘하 2장 2-4에서 놀랍게 제시된다.

"그는 왕위를 획득하기 위해 그 어떤 싸움도 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요압에게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싸움의 책임만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간혹 그가 직접 싸움에 개입한 것은 오직 평화를 위해 잔인한 복수와 비열한 암살을 억누르고 징계하기 위함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모두가 다윗의 관용의 모습, 즉 그가 하나님의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불행한 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삼하 2:4).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기록된 유일한 싸움은 아브넬이 촉발한 것이었고, 요압의 예사롭지 않은 절제를 통해 해소되었다(2:12-32).

"다윗의 관대한 본성은 그가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통해 다시 빛을 발한다. 다윗의 생애에서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적이었던 아브넬의 피 묻은 시신을 실은 상여를 따라가 그의 무덤 앞에서 애처로운 만가(輓歌)를 부름으로써 고귀한 영혼을 지닌 자들이 죽음을 통해서 이룬 화해를 확증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삼하 3:31).

그가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 백성들을 기쁘게 했다는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36절). 또 우리는 그가 자신이 아직도 약하다고 시인한 것을 통해(39절)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많은 일을 감당했던 강력한 군인들에게 맞서기에는 그가 새로 얻은 왕권이 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Alexander Maclaren).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