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09] 도덕적 실패(사무엘하 3-4장)

En Hakkore 2024. 2. 22. 17:13

당파간의 분쟁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 3:1).

우리가 앞 장 말미에서 언급했던 싸움은, 비록 다윗에게 아주 유리하게 전개되었지만, 그와 이스보셋 사이의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사울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아들과 백성들은 다윗의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후로도 5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다윗과 맞섰고, 이스보셋의 사람들과 다윗의 충직한 백성들 사이에서는 여러 차례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다윗은 이스보셋의 사람들에게 거친 방법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이런 관대함과 온유함이 약함이나 두려움으로 오해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적들이 그를 타도하기 위해 계속해서 애를 쓸 빌미를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약해져갔고, 마침내 이스보셋은 다윗과 동맹을 맺을 마음까지 먹게 되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의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이 구절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예표로 간주될 수 있다. 유다의 왕으로 높아진 다윗은 아담의 타락 때문에 진창에 빠졌다가 건짐을 받아 영원한 바위 위에 발을 올려놓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사무엘상 2장 8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평안과 기쁨만 계속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내적 타락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거듭남과 더불어 주어진 은혜의 원리를 계속해서 공격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갈 5:17).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인가? 육체가 승리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을 괴롭힐 수 있고, 소규모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점차 육체는 약해지고, 성령이 힘을 얻는다. 그러다가 결국 죄가 완전히 파멸한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왕국은 내전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다윗이 옳았음에도 그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은 주석가들에게 곤란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구절이 다윗이 "하나님의 최선(God's best)을 놓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암시라고 여긴다.

이것은 요즘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데, 여기에서 그것에 대해 상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 의해 훼방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만은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것은 정말 아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전능하신 분의 계획을 뒤엎기보다는 태양이 빛을 비추지 못하게 하거나 파도가 넘실거리지 못하게 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 115:3).🤞

조건적 약속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영원한 명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들 중 많은 것이 조건적인 반면, 그분의 명령은 변할 수 없으며 그것의 성취를 위해 그분의 전능하심 외에는 아무데도 의존하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 중 많은 것이 "조건적"(conditional)이라는 말은 그것들이 불확실하거나 믿을 만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 말의 뜻은, 그 약속들은 우리가 어떤 행동 과정을 따를 경우 하나님이 틀림없이 행하시거나 주실 것에 대한 절대 확실한 선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위협이 만약 우리가 어떤 행동 과정을 따른다면 그분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선언인 것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 바 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3:20a).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그분이 옳은 방법으로 간절히 은혜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기꺼이 제공하고자 하시는 은혜를 얻지 못한다면, 그때는 사정이 어찌되겠는가?

동일한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b절).

여호수아 1장 8절에 나오는 선언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첫째 이 구절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지적해 두자. 이것은 성도의 현재의 삶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이 구절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약 우리가 모든 일에서 그분의 말씀을 우선시하고 그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내적, 외적 삶을 다스린다면, 그분이 우리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형통케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를 때 우리의 동료들 대부분이 좌초하는 바위들을 피해갈 것이며, 우리의 삶의 모든 다양한 측면과 관계들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리라는 뜻이다. 즉 지극히 현명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과 우리의 최고선을 위한 형통의 종류와 방법 모두를 결정하시리라는 것이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나타나는 원리들은 옛 언약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남아 있는 한, 그 원리는 모든 세대에 효력이 있다.

"여호와께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까지 아니하실 것이다"(시 84:11)라는 말씀은 인간 역사의 초기부터 진실이었고, 역사의 마지막 때까지 그러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이 고안한 수단을 따르며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는 자들은 역경을 당할 것이고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으리라는 것 역시 동일하게 진리다.

그것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의 최선"을 놓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그들의 것으로 정해 놓으신 은혜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의 삶을 사는 자들의 현재의 분깃이 되리라고 약속하고 있는 좋은 것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