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88] 슬픔 속에서 주를 의지함(사무엘상 30장)

En Hakkore 2024. 2. 21. 09:06

앞 장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다윗이 빠져들었던 사냥꾼의 덫으로부터 그를 구해내기 위해 얼마나 은혜롭게 개입하셨는지 살펴보았다. 그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를 고찰하기 전에 잠시 하나님이 적절한 시기에 다윗에게 개입하셨던 복된 방식을 살펴보자.

"범사에 기한이 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 3:1, 11)라는 말씀은 자연계에서뿐 아니라 영적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자신의 삶에서 갑자기 그리고 예기치 않게 상황이 바뀌었던 경향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당시의 상황을 그렇게 만드신 분의 지혜와 선하심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계속해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어떤 요소로 인해 갑자기 우리의 상황이 뒤바뀐 적도 있었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통해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그렇다, 내가 어디엔가 머무는 날과, 여행하는 날과, 번성하는 날과, 역경을 당하는 날과, 성도들과 교제하는 날과, 홀로 외로이 고립되어 있는 날 등 모든 날이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은 복되다.💕

또 우리의 마음이 그런 사실에 의지해 쉼을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고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분에 의해 정해진다는 사실, 영원전부터 나의 출생일을 정하신 분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도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젊고 건강한 때와 약하고 병들 때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안정시켜 줄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

그분은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구해내실 가장 좋은 때를 알고 계시다. 또 그분의 자비는 내가 움직여야 할 때 나를 위해 길을 열어 주신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기스의 진영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의 부재를 틈타 무방비 상태의 시글락을 공격해 성읍을 불태우고 여자와 아이들을 잡아갔다. 그렇게 잡혀간 자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향해 자비를 베풀 계획을 세우셨다. 그들의 안타까운 상황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기만적이다. 당시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구해낼 방도를 마련하고 계셨다.

우리와 달리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거나 늑장을 부리시지 않는다. 아기스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일주일만 일찍 소집 해제했다면, 그들은 시글락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징계와 그로 인한 큰 복을 놓치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그들이 일주일만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면, 아마도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되찾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윗을 블레셋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신 시점이 얼마나 적적했는지 보라!

여호와를 힘입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3-4).

주목해 보라, 아직도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거나 그분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충격과 슬픔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아마도 여러분은 각자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이런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어둡고 암울한 상태로 밀어넣는 심각한 경제적 실패, 사랑하는 이와의 갑작스로운 사별, 그리고 당신이 슬픔에 처해 있을 때 모든 이들이 당신에게 맞서는 듯 보이고 기도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아, 다윗과 그의 사람들만 문제와 고뇌에 압도되었던 게 아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삼상 30:6a).

그의 신실한 추종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야말로 다윗이 마셔야 하는 쓴 잔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조차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만약 그분의 징계의 회초리 한 대가 별 소용이 없다면, 또다른 회초리가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그 이상의 회초리가 이뤄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거룩하신 아버지는 그분의 엇나가는 자녀들이 뉘우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을 무한정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은 시글락이 폐허가 되고 자신의 가족들을 잃어 버리고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렇기에 또다른 수단이 사용되었다.

자기 사람들의 분노는 다윗을 무기력 상태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그의 생명을 위협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자신에게 이끄시기 위해 취한 방법이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b).

바로 여기에서 이 어두운 장면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뚫고 들어온다. 그러나 우리가 그 빛을 잘못 사용하지 않으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문장이라도 고립된 단어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성경의 말씀은 성경의 다른 말씀들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말씀에는 아주 많은 내용이 들어 있기에 어느 작가라도 그것들을 다 밝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그 중 세 가지에만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첫째, 다윗이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었던 것에 전제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다윗이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셋째, 다윗이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은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로서의 다윗의 인물됨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그의 안타까운 실패를 설명하는 모든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우리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구절을 신앙의 유비라는 빛에 비추어 살펴본다면,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이 말씀의 행간(行間)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