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 81] 시글락에 머뭄(사무엘상 27)
아말렉에 대한 공격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삼상 27:8).
"하나님의 종들의 양심이 그들에게 그들의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그들이 쓰는 계략들 중 하나는 종종 새롭게 힘을 내서 어떤 옳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마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성공적으로 힘을 쓴다면 자기들이 저지른 악을 보상할 수 있고 자신들의 불안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글락에서 자기 힘으로 얻은 휴식을 누리던 다윗은 그 휴식을 포기하고 새롭게 힘을 내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적들을 치기로 작정했다. 가까운 곳에 아말렉 사람들이 있었다. 아말렉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이 그들과 영원토록 싸우겠다고 선언하셨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과 싸웠고, 승리를 거뒀다"(B. W. Newton).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침공했던 자들은 가나안에 거주하던 원주민들 중 일부였다. 그들은 사울의 칼을 피해 보다 먼 지역으로 달아난 자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다윗의 공격은 잔인한 행동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은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파멸을 선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출 17:14).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들의 공인된 적이라고 할지라도, 다윗이 그들을 공격한 것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들을 공격했던 주된 목적은 아마도 자기 병사들을 위한 식량과 전리품을 얻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성공보다 더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삼상 27:9). 다윗은 전리품들로 풍족해졌다. 그리고 그 전리품은 여호와의 적들을 쳐부수고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성공이 이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처럼 보일 수 있겠는가"(B. W. Newton).
우리가 유념해야 할 엄중한 경고는 본문 8-9절에 기록되어 있다. 즉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성공 여부를 기준 삼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원리는 명백하게 무시되고 있다.
오늘날 어떤 행위가 굉장한 결과를 낳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여러 가지 세상적인 술책들이 교회 안으로 유입되고 있다. 복음 전도자들이 인간적이고 고압적인 방법들을 택하고 있다. 사람들을 모으고,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회심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즉 목적만 좋다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거의 무엇에든지 눈짓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얻은 "하나님의 복(?)이야말로 자신들에게 큰 잘못이 없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여긴다. 아마도 모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분노에 차서 내리친 바위에서 생수가 솟아올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추론했을 것이다.
아말렉 사람들을 쳐서 성공을 거둔 다윗 역시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무언가를 가시적인 결과를 기준 삼아 판단하는 것은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성경을 기준 삼아 판단하고 성경과 어긋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거짓말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삼상 27:9).
이 구절의 마지막 말에 주목하라. 우리는 아기스야말로 이때 다윗을 보고 싶어 할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조용히 시글락으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더 신중한 처사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멀어지고 불신앙에 사로잡히면, 그는 더이상 상식의 명령을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그 사실에 놀랍고도 엄중한 실례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오, 우리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기를!
신앙과 지혜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연결되어 있다. 불신자의 마음에서는, 즉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에서는 어리석은 것만 나올 뿐이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삼상 27:10a).
의심할 바 없이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사실 그는 그렇게 놀랄 만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누구를 침략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한 다윗의 답변을 듣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10b절).
이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옹호될 수 없는 말이었고, 우리가 따라해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다윗은 아기스가 진실을 아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지금 그는 예전처럼 미친 사람 흉내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택한 보호처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 왕에게 말을 얼버무렸다.
아말렉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동료로서 역시 가나안 족속에 속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아기스와 그의 백성들은, 비록 그들이 그들과 동맹을 맺은 상태는 아닐지라도, 자기들 가운데 그토록 강력한 적을 품고 있음으로 인해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을 쫓아내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다윗은 거짓말을 했다. 오, 우리 모두는 매일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