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73] 사울과의 마지막 대화(사무엘상 26장)

En Hakkore 2024. 2. 19. 11:24

사울을 향한 항변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삼상 26:17a).

왕은 아브넬을 비난하고 있는 자의 음성을 즉시 알아차렸고, 그를 향해 진심어림 우정을 느끼며 말을 건넸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련하게 타락한 인간의 불안전성과 변덕스러움에 대한 또 하나의 예를 보게 된다.

사울은 어제는 다윗의 목숨을 노렸으나, 오늘은 애정을 갖고 그를 향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런 피조물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라고 선언하시는 분을 더욱 더 숭배하고 사모해야 마땅하다.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17b절).

다윗의 이 말은 아주 아름답다. 다윗은 사울의 변덕스럽고 쉽게 배반하는 인품을 존경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의 직무를 존경했고, 그가 갖고 있는 왕위에 대해 합당한 예를 표했다.

다윗은 사울의 왕위를 인정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가 자신의 주군임을 시인했다. 이것은 사울에게 자신이 그가 생각하는 반역적인 폭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말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삼상 26:18).

다시 한 번(삼상 24:11 참고) 다윗은 왕에게 차분하게 합의했다. "당신이 이토록 내 피에 굶주리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가 그렇게 물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첫째, 다윗은 그의 적이 아니라 "종"이었고 왕실의 이익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사울이 기꺼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고 자기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그 자신의 유익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하나님의 종들을 몰아세웠던 다른 통치자들 역시 동일하게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보다 통치자들에게 충성하면서 그들의 힘을 진정으로 강화시키는 자들은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역자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것은 그를 그의 주인과 그에게 합당한 일로부터 몰아내는 것이었고, 또 존경을 갖고서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도망치게 하는 것이었다. 오, 죄의 과도함이여! 그것은 단지 불합리하고 불공정할 뿐 아니라(그렇기에 "불법"이라고 불린다). 또한 그 본성과 결과에 있어서 잔인하다.

셋째, 그는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하고 물었다. 이것은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오직 그런 사람만이 묻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질문이다. 사울이 다윗에게서 그 어떤 비난할 만한 죄도 발견할 수 없었음에도 그를 범죄자처럼 박해했던 것은 그의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윗이 이런 정직한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적들을 향해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 8:46). 또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요 18:23) 하고 도전하셨던 분을 예표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다윗이 두려워했던 것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재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삼상 26:19a).

다윗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울이 자신의 엄중한 질문에 대해 말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윗은 이제 왕이 자신에게 그토록 무정하게 행동했던 까닭에 대해 두 가지 가능한 설명을 제시했다.

첫째로,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사용해 그분의 종인 자신이 저지른 어떤 잘못을 타당하게 징계하시는 것일 수 있었다. 다윗의 마음에 우선 떠올랐던 것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입장이었다.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이것은 성도의 양심이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측면이다.

왜냐하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고"(애 3:33). 대개 우리가 그분께 우리에게 회초리를 사용하실 기회를 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다 엄격하게 심판한다면(고전 11:31),

하나님은 이런 기회의 대부분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욥과 더불어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0:2) 하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만약 주님이 우리에게 그 어떤 죄에 대해서라도 유죄 판결을 내리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분께 제물을 드리도록 하자.

다윗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죄에 요구되는 제물을 바치려 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고, 그 죄에 대한 용서를 얻기 위해 새롭게 그리스도의 보혈에 탄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둘째로, 만약 그것이 하나님이 다윗을 징계하기 위해 사울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아니라면(실제로 그러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악한 사람들이 사울을 부추겨 그토록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했던 것이라면, 하나님의 복수가 그들에게 분명하게 임할 것이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경우에 다윗이 보여 준 온유함에 주목하는 것은 복되다. 그는 왕을 비난하거나 그의 악함을 그 자신이 악한 탓으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그의 악한 행위에 대한 모든 가능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삼상 26:19b).

다윗에게는 바로 그것이, 즉 사울의 신하로서의 명예로운 지위를 빼앗기는 것이나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추방되고 은혜의 공적 수단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그는 더이상 성막에서 예배할 수 없었고, 광야와 산으로 쫓겨다녀야 했다. 그리고 이제 곧 그는 거룩한 땅을 떠나야 할 처지였다.

다윗의 적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결과적으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이나 섬기라." 그들은 다윗이 온갖 유혹에 휩싸이게 될 외국으로 그를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가장 괴로워했던 것이 이제 자기가 단지 낯선 자들일 뿐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음을 아는 것은 복되다.

아,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과 아브넬과 그의 동료들이 고백하는 신앙을 완전히 혐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오직 그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 때문이었다. 그 은혜가 없었다면,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나는 차라리 블레셋 사람이 되어 블레셋 사람으로 죽겠다!" 그렇다, 그리고 아마도 이 장을 읽는 많은 이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불친절하고 불공정하고 반역적이고 악의에 찬 대접을 받을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참된 형제와 자매가 된 자들로부터 온다면, 그때 우리는 뿌리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고, "만약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강력한 권능이 없다면, 나는 더이상 그것과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자, 그분의 은혜는 충분하다.👏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삼상 26:20).

이 말로써 다윗은 사울에 대한 자신의 말을 마쳤다.

첫째, 그는 만약 사울이 자기의 피를 흘린다면 그 피는 여호와 앞에서 흘리는 피가 될 것이고, 따라서 그분은 그를 무죄하다고 여기지 않으시리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둘째, 그는 이스라엘의 군주가 이새의 아들 - 여기서 그는 자신을 하찮고 무가치한 "벼룩"에 비기고 있다 -을 뒤쫓는 것은 그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셋째, 그는 당시 자신의 상황을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할 경우 저항하기는 커녕 겨우 도망이나 치는 하찮고 무해한 "메추라기"에 비기면서 - 실제로 당시 다윗의 처지가 그러했다-왕의 양심에 호소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