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 71] 징계(사무엘상 26장)
신중함과 용기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군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삼상 26:3-4).
"다윗은 도망치지도, 나가서 사울을 맞이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사울이 실제로 자기를 죽이기 위해 왔음을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이 더 큰 군대가 그를 향해 왔다면, 분명히 그는 자신의 작은 무리로 그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고, 그 싸움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Thomas Scott).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다윗은 큰 무리의 군대가 자기와 자기의 사람들이 숙영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던 것 같다. 그 다가오는 군대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그것이 사울일 거라고 추측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다.
그는 아주 확실한 증거를 얻기 전까지는 왕이 다시 자신에게 그렇게 야비하게 나오리라고는 완전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우리에게 만약 논의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통해 굳게 믿을 수 있기 전까지는 우리가 우리의 적들 중 가장 악한 자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본보기를 제공한다.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서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삼상 26:5).
다윗이 사울의 진영과 참호가 얼마나 견고한지 살피기 위해 정찰을 나갔던 것은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때였다. 비록 그는 여호와가 자신의 보호자이심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기가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말고 자신의 안전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롭게 행동하기도 해야 한다. 여기에서 다윗이 그 중요한 임무를 자기의 수하들 중 누군가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수행했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도자는 늘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에서 선두에 서야 한다.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삼상 26:6).
이제 다윗은 자기와 함께 있던 자들 중 두 명에게 누가 이 지극히 위험한 일 - 둘이서 삼천 명의 군사들의 주둔지 속으로 들어가는 일 - 에서 자기를 수행할 것인지 물었다. 다윗이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은 틀림없이 성령의 지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또다시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을 참이었다. 아히멜렉은 아마도 개종한 헷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무거운 시험에 요구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다윗의 조카 아비새(대상 2:15-16)는 흔쾌히 다윗을 수행하기로 동의했다.
섭리를 가장한 유혹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삼상 26:7).
다윗과 그의 하나뿐인 수행원 앞에 얼마나 놀라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던가? 경호원들은 어디에 있는가? 보초들은 그들의 의무를 방기했던 것일까? 경보를 울릴 사람조차 없었다. 진영 전체가 너무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에 그 두 명의 초대 받지 않은 방문객들이 그들 한 가운데서 걸어다니며 대화를 나눴음에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하나님은 얼마나 쉽게 적들 전체를 무력하게 만드실 수 있는가! 자연의 모든 세력들이 그분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잠에서 깨우실 수도 있고, 산 자를 아무도 깨울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실 수도 있다. 사울과 그의 모든 군사들은 마치 쇠로 만든 족쇄에 채워진 것처럼 무력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삼상 26:8).
아비새는 예전에 동굴에서 있었던 사건에 비추어 볼 때(24:4-6), 다윗이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을 꺼리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가 자기 부하가 그를 죽이는 것은 허락하리라고 생각했다. 또 그는 그렇게만 한다면 자기가 일격에 그 오랜 박해자를 단번에 제거해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겪어 왔던 어려움과 위험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사울이 또다시 자기들의 수중에 떨어진 것은 바로 그런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우리가 격분한 적의 분노에 맞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보다 열정적이지만 영적이지 못한 친구들의 지나침을 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런 일에 얼마나 많은 거룩한 결단이 요구되는지 보여 주는 한 예다.
다윗 앞에는 강력한 유혹이 놓여 있었다. 만약 그들의 입장이 역전되었더라면, 사울은 다윗 죽이기를 머뭇거렸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윗이 그런 감정에 휩쓸려야 하는가? 더구나 지금의 상황은 하나님이 바로 그 목적 때문에 상황을 그렇게 만드신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기회는 이번 경우만큼 유혹적이지는 않았다. 그때 사울은 우연히 동굴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지만, 지금은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사울의 진영 전체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수행원은 그에게 지금 그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조차 다윗은 왕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그는 아비새에게 하나님이 성별하신 사람을 치는 것은 죄라고 말했다(9절). 왜냐하면 사울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었고 그의 직책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그런 일은 불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조만간 하나님이 그를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10절). 그는 여호와께서 얼마 전에 나발을 치셨던 것을 기억하며 자신을 위한 복수를 하나님께 맡겼다.🤞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삼상 26:12).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자신의 적들에게 놀라운 인내를 보이셨던 그리스도(벧전 2:23)의 예표로서의 다윗을 발견한다. 다윗이 그 일을 처리하며 취한 절차는 사울에게 자기가 그를 살해할 수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또 그것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그를 버리셨고 이제 그분이 다윗을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우리가 경솔하게 자신의 안전을 확신하며 경계를 늦출 때, 우리는 그런식으로 우리의 힘과 위로를 잃어버린다"(Matthew Henry).👏
사울이 그의 창과 물병을 잃어버린 것에는 이런 실제적인 교훈이 들어 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