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66]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함(사무엘상 25장)

En Hakkore 2024. 2. 19. 11:18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 11:31).

이것은 이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내용을 소개하기에 적합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이제부터 우리가 살필 내용에서 놀라운 실례를 얻는다. 사무엘상 25장 마지막 부분은 그 장 전반부에 실려 있는 이야기의 복되고도 엄중한 결과를 제시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사악한 자가 기고만장하고, 반면에 의로운 자가 무시당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또 비열한 나발의 경건한 아내가 도망자 다윗을 자비롭고 충성스럽게 돕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그 사악한 자에게 무겁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과 의로운 자에게 보답하시는 그분의 은혜의 손길을 발견한다.

보응하시는 하나님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솔로몬의 영감에 찬 무수히 많은 잠언들 중 이것만 유일하게 "보라"(Behold)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은 이제 곧 자신이 아주 중요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테니 면밀하고 존경어린 관심을 갖고 마음의 눈을 그것에 맞추라는 의미다.🤞

그 주제란 인간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처리(providential dealings of God)라는 것인데, 이것은 안타깝게도 지난 두세 세대 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고 오늘날에는 그것에 대한 무지와 오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잠언 11장 31절에는 다음 세 가지 사항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첫째,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의 일들을 처리하신다. 둘째, 그분은 무고한 자를 변호하시고 자신의 억압당하는 백성들을 옹호하신다. 셋째, 그분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괴롭히시고 거꾸러뜨리신다.

실제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 응보의 날, 즉 하나님이 의로운 자들에게 보답하시고 사악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하나님이 지금 그렇게 하신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장을 열며 인용했던 말씀은 분명하게 "의인이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서도 그 안에 실려 있는 개인과 가족과 나라들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이런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벌을 내리셨고 아벨은 하나님을 향해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 4:13) 하고 부르짖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은 홍수 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바로는 히브리 사람들을 학대했고 홍해에서 익사했다. 사울은 다윗의 목숨을 노렸고 전장에서 살해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시 58:11).💕

그러나 혹자는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말한 모든 내용은 구약 시대에는 타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시대인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하나님이 그분의 왕위에서 물러나셨는가? 이제 그분은 더이상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는가? 그분의 의로운 통치는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저런,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과 죄인들에게 보응하시는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예가 바로 이 기독교 세대에서 일어났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하고 십자가에서 처형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공식적으로 심판하셨던 때는 A.D. 70년이었다.

그때 이후 그 민족의 상황은 이 엄중한 진리에 대한 영속적인 실례가 되었다. 동일한 원리가 기독교가 그것을 핍박하던 자들의 폐허 위에 세워짐으로써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면, 구약 시대에 성도들 역시 우리들 못지 않았다(합 2:1-4).

그러나 다음과 같은 보다 무서운 반대의견에 주목해 보자. "그릇되게 비난을 받고 격하게 박해를 당하고서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 의해 해원(解冤)을 얻지 못한 의로운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번성하고서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은 사악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일에 늘 즉시 대응하시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래 살았기에 그동안 주일에 장사를 하고, 과부들을 박대하고, 모든 믿는 자들을 조롱했던 이들이 결국 곤경에 처하게 된 경우를 많이 보았다.

둘째, (한편으로) 하나님이 지금 심판자로서 행동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뿌린 것을 온전히 거둔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는 다행스러운 타협점이 존재한다.

다른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진리는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한다. 만약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모든 의로운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보답하시고 모든 악한 자들을 분명하게 벌하신다면, 위대한 심판의 날에 속한 일들 대부분이 미리 이루어지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 높여 주시지 않거나 그분에게 공공연히 도전하는 자들을 벌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그 위대한 심판에 대해(오늘날 거의 읽히지 않는) 진리의 말씀 안에 계시된 것 이상의 그 어떤 사전 통고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문제들을 섭리를 통해 다루시면서 자신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불의에 대한 혐오를 충분히 분명하게 표명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기 위해 그분 앞에 설 때 있을 법한 일들에 대해 변명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으시기 위함이다.

반면에 경건한 자들이 분명하게 보답을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뜨거나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번성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이제 곧 완벽하게 입증되리라는 믿음을 위한 충분한 여지를 남겨놓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또한 우리 앞에는 하나님이 사악한 자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에 대한 분명한 실례들도 충분히 많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갖게 해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