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65] 아비가일의 개입(사무엘상 25장)

En Hakkore 2024. 2. 19. 11:18

지혜로운 말

아비가일이 그를 만났을 때, 분명히 다윗은 그의 악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길을 가던 중이었다(삼상 25:20). 그녀가 다윗을 만나서 취했던 자세를 살펴보는 것은 복되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삼상 25:23-24).

이것은 단순한 아첨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한 동방의 인사법 이상이었다. 이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믿음의 승인이었다. 나발은 다윗을 도망다니는 노예로 여겼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를 높은 자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 중에 있는 자신의 왕으로 여겼다.👏

이때 그녀가 다윗에게 했던 말(삼상 25:24-31)은 면밀하게 연구해 볼 만한 주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녀의 말의 몇 가지 특징들만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아비가일이 다윗의 복수심을 비난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비난은 그녀가 하기에 적당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의 양심이 그 자신을 비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의 행위를 변호하지도 않았다. 사실 지금 그녀는 자기 남편의 약점을 덮어 줄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다윗에게 무분별하고 오만한 것으로 유명한 자기 남편의 인품에 대해 거론하고, 그가 왜 자기 남편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려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려 했다(25절).

"그녀는 나발(그 이름의 의미는 '미련한 자' 였다)이 특별히 그를 모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자기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대하던 일반적인 방식으로 말했던 것뿐이며, 따라서 다윗이 그런 자의 무례함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그의 명성과 명망에 합당하지 않다고 넌지시 알려 주었던 것이다"(Thomas Scott).

아비가일의 경건함은 본문 26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그녀는 다윗의 얼굴에서 어떤 변화를 감지했거나, 혹은 자기가 그의 마음을 얻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자신의 탄원이나 은혜의 탓으로 여겼다.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그렇게 할 때만, 즉 우리가 우리의 동료 피조물 안에 있거나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한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탓으로 돌릴 때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께 합당한 지위를 얻으신다.🤞

그녀가 자신의 야비한 남편을 감싸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아름답다.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소서"(24절).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28절). 그녀는 자기 남편이 다윗의 삶들을 홀대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분풀이를 하려 한다면, 내 어리석은 남편이 아니라 나에게 하소서." 본문 29-31절에 실려 있는 그녀의 마무리 발언은 아주 아름답다.

첫째, 그녀는 사울의 잔인한 박해에 대해 언급하지만 왕위에 대한 충성을 보이며 그를 "왕" 이라는 칭호 대신 "사람" 이라고 부르고. 또한 아주 놀라운 표현을 사용해 다윗의 생명이 보존될 것이라고 확언한다(29절).

둘째, 그녀는 현재 다윗이 처한 비참한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서 확신을 갖고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를 내다본다(30절). 이것은 지쳐 있는 하나님의 종에게 얼마나 기운을 북돋우는 말이 되었을까!

셋째, 그녀는 다윗에게 다가오는 영광을 생각해 현재의 행위를 제어함으로써 그날에 그의 양심이 과거에 행한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게 하라고 탄원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자신에게 가까이 옮겨 놓는다면, 확실히 우리의 행동은 그로 인해 훨씬 더 잘 제어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윗에게 그가 왕위에 오를 때 그의 "여종"인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다.

책망을 받아들임

"슬기로운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 25:12). 아비가일은 다윗의 분노를 현명하게 책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세웠던 원칙을 따라 그 책망에 귀를 기울였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시 14:5). 그 책망은 이보다 더 훌륭하게 제공될 수도 없었고, 이보다 더 훌륭하게 수용될 수도 없었다" (Matthew Henry).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은 그런 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유죄 판결에 순응하며 그것에 대해 열려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기꺼이 드러내 보이려 한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나발처럼 야비하고, 완고하고, 오만하고, 굽힐 줄 모른다.

아, 사랑하는이여, 이것에 유념하라. 만약 오늘 우리가 충실한 조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미래에 여러 가지 어리석음으로부터 구함을 받을 것이고 비통한 후회를 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에 복을 주셨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모든 상황 그리고 자신의 비통한 마음과 계획을 올바른 빛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이 죄의 길에 있는 자기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을 그 길에서 건져주신 것을 찬양했다(32절). 우리가 그런 건짐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고 시인하는 것이야말로 영성의 참된 징표다.🤞

둘째, 그는 아비가일이 자신과 이제 자기가 막 행하려 했던 죄 사이에 친절하게 개입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33절). 아, 우리는 비난을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그토록 충실하게 비난해 준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다윗은 자기가 계획했던 악한 일에 대해 가볍게 말하기는커녕 그것의 악함을 강조했다.

셋째, 그는 그녀의 선물을 받아들인 후 평안을 빌며 그녀를 보내 주었다(35절).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현명한 사람은 좋은 충고를 - 비록 그것이 자기보다 열등한 자에게서 올지라도 - 받아들인다는 것과, 설령 자신이 이미 어떤 맹세를 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악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들에게 유익이 될 만한 것을 몇 가지 지적하겠다. 위의 사건에서 우리는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께 이끌리는 자들이 복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매여 있었다. 우리는 나면서 행위의 언약인 율법에 묶여 있다. 그 율법은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골 2:14)이다.

둘째, 그녀는 나발에게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롬 7:1-4을 보라).

셋째, 그녀가 다윗을 찾아갔던 것은 임박한 위험에 대한 소식 때문이었다(17절).

넷째, 그녀는 다윗 앞에서 꿇어 엎드렸다(23절).

다섯째, 그녀는 다윗에게 와서 "죄악"을 고백했다(24절).

여섯째, 그녀는 "용서"를 구했다(28절).

일곱째, 그녀는 다윗의 선함을 확신했다(28절).

여덟째, 그녀는 그가 높아질 것을 인정했다(30절).

아홉째, 그녀는 죽어가던 강도처럼 자기를 "생각해 줄 것을" 부탁했다(31절).

다윗은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녀를 용납했고 "평안히 올라가라"고 말했다(35절).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