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5] 유다로 돌아감(사무엘상 22-23장)

En Hakkore 2024. 2. 17. 10:38

앞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아들람 굴에 머물렀던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무엘하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 사건이 이 무렵 우리의 영웅의 영적 삶에 대해 흥미로운 빛을 비춰준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니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 23:13-17).

당시의 시련이 다윗의 마음에 행복했던 고향 집에서의 생활을 떠올리게 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날이 무더웠는지 그는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뜬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싶다는 갈망을 표현했다. - 자기 부하들 중 몇 사람이 자신에게 그 물을 가져다 주기 위해 목숨을 걸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러나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추방된 자신들의 대장에게 깊이 헌신했던 장수 세 사람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블레셋 군대를 돌파하고 나아가 다윗이 바랐던 그 우물물을 길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에 감복하고 그들의 자기희생에 마음이 움직인 다윗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가져 온 물은 자기가 마시기에는 너무 소중하며, 오직 전제(奠祭)로서 "여호와께 부어 드리는" 것만이 합당하다고 느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적용한 바 있다.

"다윗은 그 물을 아주 값진 것으로, 즉 그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복된 구주께서 그분의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얻어낸 유익들을 그보다 훨씬 귀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사건에 대해 주석했던 다른 이의 말을 인용해 보자.

"이 장면에는, 우리가 그 세 명의 용감한 사람들이 다윗을 위해 물을 길어온 행위에 대해 생각하든, 아니면 다윗이 그것을 여호와께 부어 드린 행위에 대해 생각하든, 특별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들어 있다.

다윗이 그들의 그런 비상식적인 헌신 속에서 주님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는 제사(祭祀)를 인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야 하는 그 제사의 향기는 그가 중간에서 가로채기에는 너무나 귀했다.

그렇기에 그는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아주 은혜롭게 그것을 받으실만하고 또한 그것을 정당하게 음미하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신 분에게 올라가도록 그것이 자기를 지나가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빌립보서 2장 17-18절에 실려 있는 기독교적 헌신에 관한 아름다운 개요를 떠올리게 한다. '만일 너희 믿음의 재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이 구절에서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의 제사장적 특성을 대표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분에 대한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그가 자기를 망각하는 헌신의 강도는 너무나 높았기에 그는 자신이 그들의 재물 위에 전제로 부어져 향기로운 향내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까지도 기뻐할 수 있었다"(C. H. M).

어떤 주석가들은 이 감동적인 일화가 다윗의 일대기 중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시기에 일어났음을 부정하고 이 사건을 그의 생애의 훨씬 후대에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역대상 11장 15절과 사무엘하 23장이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상 17장 1절과 19장 8절로 돌아가 본다면,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당시에 아주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있었고, 당시 그들과 맞서는 일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 사울이 아니라 다윗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더이상 블레셋과 교전중에 있지 않았다. 곧 살펴보겠지만, 사울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내팽개치고 오직 다윗을 잡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약탈을 계속할 기회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기록된 모든 문서들은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에워 쌓던 것을 법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왕이 아둘람 굴에 숨었던 것은 더더구나 있을 법하지 않은 일로 만들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