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41]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9. 11:40

제 3장 위대한 변화

4. 마음의 변화(1)

여기서 로마서 5:5로 돌아가보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본성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열렬히 사모했고, 모든 우상을 혐오했으며 또한 잘못된 열심으로 그 구세주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는다"고 하여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고 선언하셨다(요 5:18,42).

사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인은 하나님께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롬 8:7). 그러나 성령에 의하여 은혜의 이적이 그의 마음 속에 역사할 때,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위대한 변화를 경험한다. 그래서 전에는 무섭고 그의 생각 속에서 추방시키기를 원했던 그분이 이제는 존경과 기쁨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심에 대해 묵상하기를 즐겨하며 그 분의 영광과 기쁨을 추구함이 그의 삶의 목적이 된다.

중생인의 내부에 일어난 위대한 변화는 악의 본질, 즉 '육신'의 철폐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지배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해준다. 그리고 새로운 성벽과 신분을 영혼에게 전달해주는 거룩의 본질을 전달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더 이상 미움받지 않으시고 사랑받으신다.

육체의 악한 지배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에스겔 36:26에 언급되어 있다. "굳은 마음(the stony heart)을 제하고"가 그것이다.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심으시겠다는 의도는 '부드러운 마음'(a heart of flesh)이란 표현속에 잘 나타나 있다.

선지자는 일어난 변화가 표면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공표하기 위하여 그러한 강력한 상징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가 사용한 언어를 지나치게 육체적으로('문자적으로')간주함으로써 세대주의자들과 그들의 신봉자들은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어려움을 끌어들였으며,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내부의 기관이나 기능이 다른 것으로 대치되거나 다른 것에 의해 제거된다는 것이 아니라, 향상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원래적인 기는 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의 본성이나 기능이 변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 위에 새롭고 변형된 힘을 제공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마음의 소유자에 대해 상세하게 논설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해 혼란과 무지가 유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보다 발전된 설명을 제시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예화를 사용해 보자.

내가 오랫동안 나의 한 친구에 대해 지독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고 때때로 그를 모욕적으로 취급해 왔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그에게 행한 모든 불의에 대해 깊이 회개케 하셔서 나는 나의 죄를 그에게 겸손히 고백했고, 이후로는 그를 존경할 것이며, 그에게 행한 잘못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스스로 결심했다고 하자.

이럴 경우 내가 실제로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해도 이해못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괴로운 마음'이 내게서 제거되고 '선한 의지의 마음'이 네게 주어졌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예화로 우리가 그 과정을 완전히 설명했더고 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께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심으로 하나님께 적대적이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심어 주신 일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됐다고 본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의 통치와 죄책)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죄었느니라"(롬 6:17,18).

이 구절에서는 성령께서 죄의 종들을 의의 종들이 되게 하신 놀라운 변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 변형은 마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교후의 본(form of doctrine)을 전달받은 결과이다. 우리의 연약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유사한 표현을 살펴보자.

"경건함에 속한 진리"(딛 1:1)는 '교훈' 혹은 '가르침'의 본(form-type 혹은 impress,  R. Young은 다른 구절에서 fashion, pattern 등으로 본다)이라 불리운다. 성령에 의해 순화되고 유순하게 된 중생인의 마음 속에 사용된 주형이나 봉인은 선과 모양이 일칳며 봉인이 각인을 보유하고 있는 주형()과 비교될 수 있다.

소생한 영혼은 진리를 "전하여 받았다"(헬라 원문은 '넘겨 받다'의 뜻이 있다. 마 5:25; 11:27; 20:19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생한 영혼은 그 진리에 응답하고 또 그것을 닮아간다.

회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죄에게 종노릇하였다.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성향을 기뻐하면서 죄의 부탁을 신속하게 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복종하였다.

그들은 초자연적으로 새롭게 되어 복음 목지않게 율법의 거룩한 요구들도 순종한다. 그들의 마음, 감정, 의지는 하나님의 표준에 맞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또 다름 각도에서 위대한 변화의 구성요소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를 사랑하는 상태로부터 거룩을 사랑하는 상태로, 즉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형된 존재로 변케 하셨다는 것이다.

이 변형된 존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 고안되고 형성된 특성을 따라 마음을 기울여서 의의 규칙(the Rule of righteousness)에 내심으로 일치한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이기주의에서 나온 강요되거나 가장된 순종과 대조되는, 마음으로부터의 순종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