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8] 시글락으로 도망침(사무엘상 21장)

En Hakkore 2024. 2. 16. 12:41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드러운 사랑이 그분이 그들에게 보내시는 극심한 시련에 의해 부정되는 듯 보이는 때가 있다. 또한 그분의 섭리가 그분의 약속과 충돌하는 듯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럴때 신앙은 시험을 받고 종종 실패에 이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불신앙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통해 증거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때다.🤞

이런 원리는 성경의 모든 갈피를 통해, 특히 구약성경에서 거듭 예시된다. 그리고 그런 예시들의 주된 목적들 중 하나는 우리가 그것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간절한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지 말라고 명하신다"(벧후 3: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교묘하게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신다(롬 6:1-2).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의 실패를 우리 자신의 통탄할 만한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거나 그런 이들의 실패 사례를 우리가 그들을 집어삼킨 덫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설치된 위험 표지판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믿음의 시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후손들을 약속하셨다(창 12:2). 하지만 그분의 섭리는 그 약속의 실현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사라는 석녀(石女)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불임증은 전능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굳이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는 식으로(창 16장) 인간적인 절충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참으로 한 동안 그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그런 계책이 불필요한 것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통해서는 쓰라린 결과만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전령이 달려와 그의 형 에서가 4백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다고 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32:7) 라는 말씀을 읽는다.

인간이라니! 이것은 참으로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도 하나님을 모욕하는 짓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신데 그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했을까? 오, 주님께서 우리가 "시시로 그를 의지하도록"(시 62:8) 은혜를 베푸시기를!

사랑하는이여, 신앙은 그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유념하라. 그러나 우리에게 신앙을 주시는 분만이 그 신앙을 유지해 주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방금 살핀 주제는 다윗 이야기에서 보다 분명한 예증을 얻는다. 다윗은 택함을 받은 왕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가 왕좌에 앉아 있었다. 이새의 아들은 왕좌에 앉도록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사울에게 고통스럽게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기를 잊으신 것일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을 바꾸신 것일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말 3:6). 그렇다면 어째서 골리앗을 죽인 그가 도망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막대한 보화의 주인이 되도록 임명된 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떡 몇 덩이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다(삼상 21:3).

신앙은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의 고통스러운 결과에 대해, 또 우리가 자신을 의지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힘으로 곤경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발생하는 악한 열매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

히스기야와 관련해 우리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라는 말씀을 읽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은혜를 거두시고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버려두시기 전까지는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 알지 못한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는 자신이 그 말씀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한 구절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그것의 진실성에 동의하는 것과 자신의 개인적인 삶속에서 그 말씀을 친밀하게 아는 것은 서로 아주 다른 문제다.

내가 강하지 않고 지혜가 없다고 "믿는 것"과 그것을 실제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은 서로 아주 다른 문제다. 일반적으로 이런 앎은 한 번의 망치질로 못이 나무판에 깊숙이 박히는 것과는 달리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배워야 하고 다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고난이라는 맹렬한 용광로 안에서 우리 마음 깊이 새겨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성도들의 전기(傳記)를 통해 제공되는 교훈들에 좀더 유의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