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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67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본문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19:13).
“주석가 랑게는 이렇게 말한다. '빌라도가 상황을 조정하던 때는 지나갔다. 이제 상황이 그를 조정하게 된 것이다.' 앞에서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고(묻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이제 황제의 총애를 삶의 최상의 법으로 여겨 온 그가 두려워하여 공의가 무엇이냐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재판석에 앉아 비웃음과 무력한 마지막 호소의 중간에 해당하는 어조로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의 왕이로다' 라고 말하고 있다.”(Numerical Bible).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잔인무도한 요구에 감히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한다. 이제 그에게는 공공연하게 재판석에 앉아 형을 언도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일곱 단계에 걸쳐 심문을 받으셨는데 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그 다음의 성경 구절들, 즉 빌라도가 법정을 들락날락하며 취한 행동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신중하게 주목해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심문은 밖에서 있었다(18:28-32).
두 번째 심문은 안에서 있었다(18:33-37).
세 번째는 밖에서(18:38-40),
네 번째는 안에서(19:1-3),
다섯 번째는 밖에서(19:4-7),
여섯 번째는 안에서(19:8-11),
그리고 일곱 번째는 밖에서(19:12-16) 행해졌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성경의 다른 모든 곳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고유 명사에 심오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돌을 깐 뜰”이라는말은 신약 성경의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그러나그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구약 성경에서 꼭 한 번 찾아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두 개의 본문을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바라신 것이 분명하다.
열왕기하 16:17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Pavement, 곧 박석이라는 뜻) 위에 그것을 두며.”
아하스의 경우에 있어서 그의 이런 행동은 그가 비열한 배교를 하고 말았다는 결정적인 표시였다. 여기에서 변절한 유대인들의 수준으로 타락한 빌라도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 배교한 것은 이방인 우상숭배자에게 지배당한 유대인 통치자였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서 변절한 것은 자기들의 메시야를 배척한 유대인들에게 지배당한 이방인 우상숭배자였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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